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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영화로 경쟁력 높여야" vs "인력 이탈하는 중소기업 폐업할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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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브로드밴드, 대리점 직원 정규직 고용

SK, 하청 직원 정규직 전환…'인천공항 모델' 그대로 수용
"기존 대리점주에 충분한 배려…문 대통령 의식한 건 아니다"

대리점 "20년 기반 닦았는데"
"중소기업 100개 없애 대기업 계열사 만드는 꼴"
점주들, 22일 긴급대책회의



[ 강현우 기자 ]
“그동안 공들여 키운 인력을 통째로 빼가면 우리는 어쩌란 말입니까. 앉아서 죽을 판입니다.”

SK그룹의 통신서비스업체 SK브로드밴드가 103개 하청업체(대리점) 직원을 정규직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나서자 한 대리점 사장은 분통을 터뜨렸다. SK브로드밴드는 현재 이 직원들을 흡수하기 위해 자회사(가칭 SKB서비스)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대리점주는 “결과적으로 SK그룹 계열사를 하나 더 만들기 위해 100여개 중소기업의 생존권을 빼앗는 꼴”이라며 “더욱이 해당 직원들은 대부분 우리 회사의 정규직”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중소기업, 뭘 두려워하나

SK브로드밴드와 대리점의 이 같은 갈등은 ‘근로자 권익 증대’와 ‘중소기업 보호’라는 진보 진영의 양대 경제적 가치가 정면 충돌한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 전망이다. 하청·파견업체 근로자의 원청업체 정규직 전환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지원한 노동계의 오랜 바람이었다. 문 대통령이 지난 12일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공사 측이 “하청·파견업체 근로자 6800여 명을 포함해 비정규직 1만 명을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문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지켜본 일부 중소기업은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 하청·파견 형태로 일하고 있는 업체들은 대부분 중소기업일 텐데, (문 대통령 방식대로 하면) 졸지에 일감과 인력을 다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냈다. 해당 분야에서 전문인력을 훈련하고 시장을 개척해 매출을 일구는 기업들이 한순간에 존폐의 기로에 선다는 얘기였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대기업이 단순히 비용을 아끼기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업무를 중소기업에 맡기는 경우는 모르겠지만 중소기업이 스스로 능력을 키워 일감을 따낸 분야까지 대기업 자회사로 갖다 바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실제 대리점 직원이 원청의 유니폼을 입고 원청이 배정한 일감을 한다는 이유로 원청 직원이라고 봐야 한다는 주장은 빵집이나 음식점 프랜차이즈 직원들도 모두 본사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얘기다. 또 대기업이 이 같은 방식으로 하청·파견·외주업체의 인력과 사업을 내부화할 경우 문재인 정부의 ‘경제력 집중 억제 정책’과 충돌할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SK, 대리점 반발 수습할까

SK브로드밴드 전국 대리점주 100여 명은 22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긴급 대책회의를 열 계획이다. 이들은 SK 측을 상대로 “그동안 전국을 발로 뛰며 개척한 시장과 인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의 성명서 발표와 함께 정규직 전환작업 중단을 촉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리점들이 반발하는 배경에는 SK브로드밴드 측의 사전 설명이 충분치 않았던 측면도 있다. 이 회사는 지난 2월 이형희 사장 주재로 전국 대리점 회의를 열었다. 2008년 SK그룹이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해 SK브로드밴드로 출범한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전국 100여 명의 대리점주를 불러모은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이 사장은 “대리점주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리점주들은 “이 사장의 말만 믿고 있었는데 돌아오는 건 계약 해지”였다고 반발하고 있다. 대리점주들은 특히 지난 4월 재하청 계약을 맺고 일감을 주던 개인사업자인 기사 900여 명을 SK브로드밴드 지침에 따라 전원 대리점의 정규직으로 전환한 터라 더욱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SK브로드밴드는 6월 말로 끝나는 계약을 갱신하지 않고, 전국 지역별로 자리잡고 있는 대리점의 사무실과 설비 등을 자회사인 SKB서비스가 인수하도록 해 직영 체제로 전환할 계획이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을 통해 서비스 질을 높여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시도”라며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는 “대리점주에게도 취업 기회를 주고 다른 창업을 지원하는 등 충분히 배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SK브로드밴드와 대리점들은 매년 7월1일자로 1년 단위 계약을 갱신해왔다. SK브로드밴드는 매년 5월 말 계약 해지를 통보한 뒤 6월 중 재계약 요청 공문을 보냈다. 1년 단위 계약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이번에 재계약하지 않아도 법적 문제가 없다는 게 SK브로드밴드 측의 설명이다.

SK브로드밴드는 인수 대가와 위로금 등의 명목으로 각 대리점주에게 1억5000만원의 일시금을 책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A대리점 사장은 “대부분 대리점의 은행 부채가 사장 개인 명의를 포함해 5억원이 넘는 상황에서 말이 안 되는 액수”라며 “매일같이 실적을 보고받는 SK브로드밴드도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B대리점 사장도 “1999년 하나로통신 시절부터 시작해 2008년 SK그룹으로 인수된 이후까지 20년 가까이 쌓아온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질 판”이라며 “아무리 정부 방침을 따른다 해도 중소기업이 공들여 키워온 전문인력을 대기업이 한꺼번에 빼가는 게 말이 되느냐”고 되물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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