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상징하는
파랑새를 찾는 틸틸과 미틸
세상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소박한 행복들이 있거든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행복을
전혀 알아보지 못해요.
주인공 ‘틸틸’을 ‘치르치르’로 잘못 번역
‘파랑새’는 ‘누구나 갖고 싶은 행복’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한낱 새의 이름이 어떤 경로에 의해 행복과 동의어가 되었을까. 1906년 모리스 마테를링크는 6막 12장 분량의 희곡 《파랑새》를 완성했고 2년 뒤 러시아 연극계의 거장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가 연극으로 만들어 모스크바 예술극장 무대에 올렸다. 연극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09년 프랑스의 프라스켈 출판사에서 희곡집 《파랑새》를 출간했다. 이후 영화, 뮤지컬, 애니메이션 등으로도 만들어져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면서 ‘파랑새’는 자연스럽게 ‘희망과 행복의 대명사’가 되었다. 변호사로 출발한 마테를링크는 시인, 극작가, 수필가로 활동하며 많은 작품을 발표했고 1911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파랑새의 주인공 ‘틸틸’과 ‘미틸’을 ‘치르치르’와 ‘미치르’로 알고 있는 이도 많다. 일본에서 《파랑새》를 번역할 때 주인공 이름을 바꾸었고 일본어 번역본을 우리말로 중역하는 과정에서 그대로 굳어진 것이다. 그래서 《치르치르 남매의 행복이야기》 《치르치르와 미치르》라는 제목으로 책을 낸 출판사도 있다.
마테를링크는 벨기에 태생임에도 모든 작품을 프랑스어로 썼다. 우리나라 출판사들이 프랑스어로 된 책들을 제대로 번역하면서 제목을 《파랑새》로, 주인공의 이름을 틸틸과 미틸로 바로 잡은 것이다.
요술쟁이가 씌워주는 마법모자
초라하지만 깔끔한 나무꾼의 깜깜한 오두막, 램프가 저절로 켜지면서 구석의 어린이용 침대에서 자고 있던 틸틸과 미틸이 일어난다. 올해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오지 않는다고 한 엄마 아빠의 말을 떠올린 둘은 이내 실망에 잠긴다. 가난한 엄마 아빠가 선물 살 돈이 없어 산타클로스가 내년에는 꼭 올 거라고 둘러댄 것이다.
두 아이가 부잣집 아이들이 파티하는 건너편 동네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똑똑’ 오두막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불안한 얼굴로 내다보는 둘 앞에 초록색 옷에 빨간 두건을 쓴 할머니가 나타난다. 자신을 요술쟁이 베릴리운느라고 소개한 할머니는 “어린 딸의 병을 낫게 하려면 파랑새가 꼭 필요하다”며 아이들에게 파랑새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신발이 없어 갈 수 없다는 틸틸에게 요술쟁이는 마법 모자를 씌워준다. 그러면서 부잣집 아이들을 부러워하는 두 아이에게 “너희가 사는 이 오두막도 저 집 못지않게 멋지단다”라고 말해준다. 자신이 늙은 할머니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며 “사람들은 왜 남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는 걸까? 참으로 딱한 노릇이지”라고 말한다. 등장인물들이 툭툭 던지는 말들만 음미해 봐도 느끼는 바가 많을 것이다.
틸틸과 미틸은 물, 불, 개, 고양이, 빵, 우유, 설탕의 요정과 함께 길을 나서서 ‘추억의 나라’ ‘밤의 궁전’ ‘미래의 나라’를 여행한다. 둘이 새로운 곳에 갈 때마다 어렵게 발견한 파랑새는 얼마 안 가 죽거나, 색깔이 변하거나, 날아가 버린다.
두 아이의 여행길을 따라가며 사람과 동물, 요정을 만나는 것만으로 재미있지만 죽음, 행복, 시간, 운명의 상징과 의미를 되새기다보면 철학자가 될지도 모른다. 오묘하고 신비한 《파랑새》 이야기는 아이와 어른을 동시에 끌어당기는 흔치 않은 고전이다.
집앞에서 파랑새를 보다
결국 파랑새를 찾지 못한 틸틸과 미틸이 1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토록 찾아 헤매던 파랑새가 눈앞에 나타난다. 그러나 자기 집 새장에 있었던 파랑새는 잠깐 사이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빛의 요정이 던진 “세상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소박한 행복들이 있거든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행복을 전혀 알아보지 못해요”라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상실감과 분노, 허전함으로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럴 때 파랑새가 가까이에 있다는 걸 기억하면 힘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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