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시대 - 청와대 조직개편
'실세수석'은 옛말
정책기획·통상 기능 넘기고 경제보좌관이 대통령 '과외'
[ 황정수 기자 ] 지난해 초 한 경제부처 차관과 실·국장들이 갑자기 청와대로 불려들어갔다. 당시 안종범 경제수석이 정책 홍보 부진을 이유로 차관에게 전화를 걸어 세종시에 있는 고위공무원들을 소집했기 때문이다. 현장에 있었던 한 관료는 “군기를 잡을 목적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에서 경제수석은 정책, 인사 등 경제 부처와 관련한 모든 영역에서 장관은 물론 경제부총리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실세 수석’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는 경제수석의 힘이 많이 약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수석비서관과 부처가 1 대 1로 연결되는 ‘부처별 대응체계’를 ‘정책 아젠다’ 중심으로 개편했기 때문이다.
직제상으로 우선 ‘왕실장’ 역할을 할 정책실장이 경제수석을 직속에 두고 관리한다. 이전 정부에선 경제수석이 현안을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었지만, 앞으론 정책실장을 통해야 한다.
여기에다 대통령의 ‘경제 과외교사’ 역할을 하는 경제보좌관까지 생겼다. 경제보좌관에게 장기 정책 과제를 맡기기로 한 만큼 경제수석 역할은 더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정책기획 기능은 비서실장 직속 재정기획관과 정책실장 산하 정책기획비서관에게 넘어갔다. 국가 예산이나 경제정책 우선순위 선정 등에 개입할 명분이 상당히 약해진 것이라는 평가다. 향후 한·미 관계의 핵심 이슈가 될 통상정책 컨트롤 기능도 정책실장 직속으로 신설되는 통상비서관이 맡는다. 경제수석에게 남아 있는 역할은 경제·산업 정책, 중소기업·농어업 관련 업무뿐이다. 사회적경제, 일자리기획 등 문재인 대통령의 관심 분야는 일자리수석 몫이다.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경제 관료들은 경제수석 기능 약화를 내심 반기고 있다. 한 경제부처 국장은 “청와대 비서관이 비서가 아니라 장관 역할을 하면서부터 행정부 위계질서와 정책이 꼬이기 시작했다”며 “앞으로는 적어도 정책과 인사만큼은 장관 손에 쥐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책실장이 왕실장으로 군림하면서 경제 관련 부처 장악력을 더 높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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