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 관리위해 '꿀수업'만 수강…중간고사 망치면 휴학도
로스쿨 '전초기지' 전락한 대학
취업난에 인문계열 대거 몰려…올 사시 폐지땐 응시자 급증 예상
교수들 "학문탐구 외면 세태 씁쓸"
[ 성수영 기자 ] 연세대 경영학과 3학년 A씨(24)는 ‘학점 리셋’을 위해 이달 초 휴학원을 냈다. 이번 학기 수강 6개 과목 중 한 과목의 중간고사를 망쳐서다. 그는 입학 직후부터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준비 중이다. 학점을 철저히 관리한 덕에 지금까지는 거의 모든 과목이 A+ 학점이다. 그는 “중간고사 결과 A학점이 힘들 것 같아 등록금이 아깝지만 휴학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대학 입학 직후부터 ‘로스쿨 올인’
만성적인 취업난 탓에 로스쿨 입시 준비에 ‘올인’하는 대학생이 급증하고 있다. 그나마 취업이 잘된다는 상경계열조차 예외가 아니다. 입학 두 달된 신입생들도 대거 로스쿨로 달려가고 있다. 올해 고려대 경영대학에 입학한 B씨(21)는 과 행사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고 법학적성시험(리트·LEET) 스터디에 몰두 중이다. “로스쿨 진학에 유리할 것 같아 대학도 재수를 해서 고대 경영대학에 입학했다”는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로스쿨로 진로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그는 “수업 내용과 관계없이 강의 평가를 보고 ‘학점을 잘 준다’는 수업만 듣고 있다”고도 했다. 로스쿨 입시에서 학점 영향이 절대적이라 학점 잘 주기로 유명한 소위 ‘꿀수업’만 골라 수강한다는 설명이다.
서울대 로스쿨의 서류전형격인 1단계 평가는 학부 성적 반영 비율이 50%에 달한다.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 로스쿨 입학생들의 학점 평점은 A0 수준이라는 게 대학가의 추정이다.
◆좁아진 취업문에…“로스쿨이 유일 대안”
사법시험이 올해를 마지막으로 폐지될 예정이라 로스쿨 준비생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작년 리트 응시자 수도 8110명으로 한 해 전 7579명에 비해 늘었다. 로스쿨 입시학원 관계자는 “사법시험을 오래 준비한 수험생의 상당수가 내년부터는 로스쿨로 방향을 돌릴 수밖에 없다”며 “리트 응시자 수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좁아지는 인문계생의 취업문이 로스쿨 열풍의 원인으로 꼽힌다. 전문 기술이 없는 인문·사회계열 학생이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로스쿨로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 2월 918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2017 채용동향’에 따르면 자연·이공계 학생을 뽑겠다고 밝힌 기업은 34.6%에 달했지만, 인문·사회계 학생을 뽑겠다는 기업은 6.8%에 그쳤다.
지성과 학문 연마의 터전이어야 할 대학이 ‘로스쿨 전초기지’로 전락 중이라는 우려가 크다. 서강대 경제학과의 한 교수는 “얼마 전 아끼는 학생에게 대학원 진학을 권유했는데 로스쿨을 가야 한다며 거절하더라”고 전했다.
연세대 경영학과의 한 교수도 “내 수업을 듣는 학생 태반이 ‘학점 따기 쉽다’는 생각에 수강 신청한 로스쿨 준비생”이라며 “창업을 하거나 학문의 길을 걷기보다 학점 잘 따서 로스쿨에 가려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자괴감이 크다”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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