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과장급 4명 의기투합…스포츠 전문 선크림 개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제품 생산·유통 全과정 챙겨"
1년 만에 이마트·롯데마트 입점
실패에 대한 부담 없고 성공 땐 인센티브까지 보장
[ 민지혜 기자 ]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네 명의 대리·과장급 직원에게 5억원을 내줬다. 제품을 만들고 파는 것 모두 그 팀에 맡겼다. “첫해는 매출 등 숫자를 보여줄 필요가 없으니 마음껏 해보라”고 주문했다. 올해도 5억원의 예산이 추가로 배정됐다. 이 팀이 개발한 제품은 지난달 말 이마트와 롯데마트 전국 매장, 롭스 전점에 입점했다. 선크림 전문 브랜드 ‘아웃런’은 아모레의 첫 번째 사내 벤처에서 나왔다.
“첫 해는 매출 등 숫자 안 본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사내 벤처 프로그램 ‘린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직원들의 자발성과 창의력으로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자는 취지였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은 2015년 린 스타트업을 장기 프로젝트로 제안했다. 그는 “민첩하게 움직이면서 과감하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팀 구조를 갖춰야 창의적인 브랜드를 육성할 수 있다”고 했다. “짧은 시간에 제품을 만들고 실수를 보완할 수 있는 기동성이 있어야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이유에서였다. 그해 12월 사내공모를 통해 린 스타트업 1기로 스포츠 선케어 전문 브랜드 아웃런이 선정됐다.
아웃런 브랜드 콘셉트는 남편이 철인 3종 경기를 한다는 브랜드마케팅팀 김소진 씨로부터 나왔다. 그는 “스포츠 의류 브랜드는 다양한데 선케어 제품은 선택의 폭이 좁다는 생각에 운동하는 사람을 위한 제품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아이디어를 냈다”고 말했다. 글로벌마케팅팀 김설빈 씨, 스킨케어 연구원 김정성 씨, 제도협력팀 출신 허선웅 씨 등 동기 네 명이 의기투합했다. “미국의 버트라, 일본의 코코선샤인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선케어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이들의 목표였다.
출퇴근·회의·출장도 자유롭게
사무실도 따로 냈다. 벤처 기업들이 모여 있는 위워크 강남역점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탁 트인 공간에서 창의적으로 일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출퇴근 시간도, 회의 시간도 정하지 않았다. 수시로 단체 카톡방에서 대화하는 게 회의다. 출장도 자유롭게 다녔다. 서핑을 즐기는 스포츠 마니아들이 버트라 같은 해외 브랜드를 직접 구입해서 쓴다는 걸 안 뒤 이들을 만나기 위해 강원 양양, 부산 등으로 돌아다녔다. 서퍼들은 바르면 하얗게 되면서 물에 씻겨 나가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강력한 제품을 원했다. 그렇게 탄생한 제품이 ‘익스트림 선스틱’이다. 또 임상시험 전문기관에 의뢰해 다섯 시간 동안 체대생 10명을 트레드밀(러닝머신)에서 달리게 했다. 땀에 지워지지 않는, 자외선 차단효과와 지속력이 강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울트라마라톤선크림’이 탄생한 배경이다. ‘땀에도 4시간 자외선 차단’이라는 문구를 포장지 겉면에 당당히 내걸었다. 국내 제품 중 처음이다.
제품 개발을 맡은 김정성 씨는 한국콜마, 코스맥스 등 대형 제조업체뿐 아니라 선스틱 제형을 만들 수 있는 작은 공장에도 일일이 연락해 원하는 제형과 기능성 원료 배합을 주문했다. 김설빈 씨는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바이어를 만나 유통망을 직접 뚫었다.
사내벤처 2기 제품도 출시
이들에게는 성공보수도 주어진다. 아웃런 팀 관계자는 “2년차부터 흑자를 내면 순이익의 20%를 팀원들에게 준다”고 말했다. 월급은 원래대로 받고, 실패에 대한 부담 없이 성공보수를 받는 벤처라고 할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1기 팀이 3년차에 접어드는 내년께 이들을 독자 브랜드로 키울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아모레퍼시픽은 곧 린 스타트업 2기를 시장에 내놓는다. 지난해 12월에 선발한 두 개 팀이 이르면 6월께 첫 제품을 출시한다. 1기는 아웃런과 자연주의 친환경 브랜드 ‘가온도담’이었다. 2기는 남성 그루밍 브랜드 ‘브로앤팁스’(가칭)와 마스크팩 브랜드 ‘디스테디’(가칭)가 선발됐다. 2기들은 올 1월 각각 준비에 들어갔다. 아모레퍼시픽그룹 관계자는 “실패에 대한 부담 없이 마음껏 도전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벌써부터 3기를 준비하는 팀도 많다”고 전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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