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 분산 따랐더니 '쥐꼬리 지분' 비난
지주회사 가라더니 '자사주 마법' 철회
지배구조 강요 '테이블 데스' 될 수도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삼성전자가 지주회사 전환을 포기했다. 실적과 능력으로 주주들에게 신임을 받겠다는 이재용 부회장의 정면 승부라는 해석도 있지만 지주회사 전환을 가로막는 규제와 법안에 발목이 잡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기업이 인적 분할을 통해 지주사로 재편될 경우 자사주의 의결권 회복을 막는 경제민주화 법안이 걸림돌이 됐다. 법안 시행이 쉽지 않다지만 삼성으로선 정치적 상황이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한국은 정말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점을 절감한다. 지배구조가 어디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 문제인가. 그런데도 정권이 바뀌면 손바닥 뒤집듯 정책을 180도 바꾼다. 심하면 5년마다 바뀐다. 조령모개(朝令暮改)도 이런 조령모개가 없다.
생각해 보라. 지주회사를 공정거래법으로 원천 금지해온 나라다. 대규모 기업집단의 경제력 집중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던 것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지배구조 투명성을 제고한다는 명분 아래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여기에는 총수 일가가 순환출자 구조를 이용해 ‘쥐꼬리 지분’만으로도 그룹을 좌지우지한다는 사회적 비난이 큰 배경이 됐다.
그러면 쥐꼬리 지분은 왜 생겼는가. 1970년대로 돌아가 보자. 당시 재계에 기업공개는 금기 사항이었다. 양질의 투자자금 유입이라는 장점보다 경영권 불안과 주주의 경영 간섭을 우려한 탓이다.
그런 기업인에게 기업공개를 강요한 것은 박정희 정권이다. 소위 소유 분산 정책이다. 기업공개촉진법이 공표된 게 1972년이다. 하지만 대주주들은 주식을 내놓지 않았다. 1975년 공개명령 제도가 나온 이유다. 공개에 나선 기업에는 금융과 외자 지원이 이뤄졌지만, 공개를 꺼린 기업에는 강도 높은 세무 조사와 여신 규제가 따랐다. 게다가 주식 매각 가격은 시가보다 낮아야 했다. 울며 겨자 먹기식 기업공개였다. 삼성전자 등 대기업들이 기업을 공개한 것이 그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주주가 소수의 지분으로도 기업을 경영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장해줬다는 점이다. 기업의 자금조달을 도와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국민과 기업 가치를 나누라는 목적이었으니 정부로서도 경영권을 취약하게 만들 이유는 없었다. 그 유명했던 증권거래법 200조다.
그래서 만들어진 쥐꼬리 지분이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대접이 달라졌다. 증권거래법의 경영권 보호 조항은 삭제되고 쥐꼬리 지분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기업들로선 하루아침에 황당한 일이 벌어진 셈이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계열사 출자와 순환출자 같은 수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져 보자. 정부의 강제 명령에 의해 기업을 공개했다. 적은 지분으로도 경영권을 쥘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말만 믿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길은 사라지고 ‘쥐꼬리 지분’이라는 비난과 함께 온갖 규제가 쏟아졌다. 순환출자 고리를 끊으라면서 지주회사로 전환하라는 압박이 가해졌다. ‘자사주의 마법’은 당근책이었다. 그런데 이제 또 조건이 달라져 정작 지주회사로 전환하려니 자사주 의결권 회복을 막겠다고 한다. 상속세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경영권이 온전할 리 없다. 대관절 어쩌란 말인가.
선거 때면 더 복잡해진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대부분 후보는 재벌 개혁 공약을 내세우고 벌써부터 으름장이다.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다중대표소송제 등 메뉴도 다양하다. 외국계 투기 자본에 지배권을 통째로 내줘야 속이 시원하다는 상법개정안이다.
오죽하면 장기 불황과 글로벌 경쟁에 지친 기업에 경영 자율성마저 제한하면 자칫 ‘테이블 데스(수술 중 환자 사망)’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볼멘 목소리가 재계에서 공개적으로 나오겠는가.
지배구조에는 정답이 있을 리 없다. 기업마다 다양할 수 있다. 미국이고 일본이고 유럽이고 기업의 지배구조는 천차만별이다. 자율에 맡기는 게 최선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때만 되면 지배구조 개선 타령이다. 대선 이후가 벌써부터 걱정스럽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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