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충청출신 전성시대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함영주·이광구·박종복 행장, 모두 충청 출신 금융인
'금융 사관학교' 대전고·강경상고
1990년대까지 많은 금융인 배출…2000년대 영호남 밀려 '숨고르기'
[ 김순신 기자 ]
충청 금융인 전성시대가 다시 열렸다. 충청 출신 금융인들이 주요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을 싹쓸이하고 있다. 지난 20일 농협금융지주 설립 이후 최초로 연임에 성공한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충남 보령)을 비롯해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대전),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충남 부여), 이광구 우리은행장(충남 천안)이 모두 충청 출신 금융인들이다. SC그룹이 제일은행을 인수한 뒤 최초로 한국인 행장으로 선임한 박종복 행장도 충북 청주가 고향이다.
충청은 금융인의 산실
충청권은 전통적인 금융인 산실이었다. 내륙 해운의 중심지인 강경(논산)과 육상 교통의 요지 대전은 국내 물류 중심지였다. 상품의 흐름에 따라 돈도 자연스럽게 돌았다. 이 지역 인재들은 재계나 정계보다 자연스레 금융으로 눈을 돌렸다.
대전고와 강경상고는 1970~1990년대 많은 금융 관료와 금융인을 배출하며 ‘금융 사관학교’로 불렸다.
이규성 전 재무부 장관이 대전고를 대표한다면 강경상고는 한국은행 국장 출신 김정렴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배출했다. 김건 전 한국은행 총재, 이근영 전 금융감독위원장, 이인호 전 신한은행장 등은 대전고를 나왔다. 현직인 조 회장과 함 행장은 각각 대전고와 강경상고를 졸업했다.
2000년대 들어 호남과 영남 출신 금융인들이 약진하면서 충청 금융인들은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2010년 이후 금융권 인사 과정에서 정치권 외압 논란이 제기되자 정치색이 옅은 충청 출신 인사들이 요직에 기용되고 있다.
외유내강…소탈하고 소통 탁월
금융계에선 충청 출신의 약진 이유로 ‘외유내강’을 꼽는다. 충청 출신 금융인은 상대적으로 소탈하고 편안한 편이어서 소통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여기에 기획과 영업 능력을 함께 갖춘 인력이 늘면서 중용되고 있다.
조 회장은 평소 소탈한 성품으로 직원 사이에서 ‘엉클 조’로 불린다. ‘시골 촌놈’이 별명인 함 행장 역시 고객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섬김과 배려의 자세로 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행장의 별명은 ‘K9’이다. 임직원들이 ‘광’의 영문 이니셜 ‘K’와 ‘구’의 아라비아 숫자를 따 K9으로 부른 것이 계기가 됐다. 담배를 하지 않는 이 행장은 고객이나 직원들 앞에선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뻐끔 담배’를 기꺼이 핀다.
김 회장은 과거 수출입은행장 시절부터 관료 출신답지 않은 친화력을 앞세워 소통에 적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현장형 영업 능력도 갖춰
현장 경험이 풍부한 것도 충청권 인사들이 약진하고 있는 배경이다. 함 행장은 고졸 신화의 주인공이다. 말단행원으로 출발해 행장까지 올랐다. 조 회장은 2015년부터 2년 동안 저금리 기조와 치열한 경쟁 등 악화된 경영환경 속에서도 ‘리딩뱅크’ 자리를 지켜냈다.
이 행장은 아이디어가 많은 영업통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행장은 개인고객 담당 부행장 시절에 개인 고객 수 2000만명을 달성했다. 카드전략팀 부장이었을 때는 ‘우리V카드’란 히트상품을 개발했다. 민영화 성공을 위해 직접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투자자들을 설득했다.
함 행장 역시 취임 9개월 만에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전산통합을 마무리했고, 양 노조의 통합도 예상보다 빠르게 성사시켰다.
김 회장은 회사 안팎의 부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빅배스(대규모 손실처리)를 단행해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 행장은 입행 후 20여년을 지점에서만 보냈다. 일선 텔러에서 시작해 해보지 않은 일이 없다. 현장 생활을 통해 영업엔 잔뼈가 굵어졌다. 박 행장은 한 번 목표를 정하면 밀어붙이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그는 영국 본사를 설득해 상징성이 담긴 ‘제일’ 명칭을 은행명에 부활시켰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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