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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 경북 경산, 원효·설총·일연 '삼성현의 고장…1300년 영험 간직한 갓바위는 오늘도 중생의 고통 어루만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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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경묵 기자 ]
국가가 혼란하고 백성이 어려운 시대, 옛 국왕들은 누구에게서 지혜를 구하고 선조들은 어떻게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했을까. 원효 설총 일연이 살았던 시대도 삼국전쟁과 무신정변, 몽골의 침입으로 혼란하고 백성들이 힘든 시대였다. 왕족과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불교를 대중화시켜 누구나 평등하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원효, 몽골의 간섭이라는 시련 속에서 민족의 자주성을 회복하려고 한 일연의 이야기를 삼성현(三聖賢)의 고장 경북 경산에서 만날 수 있다. 경산은 원효와 설총, 일연이 태어난 고장이다. 경산시가 2015년 3월 이들 삼성현을 기리기 위해 경산시 남산면 26만㎡ 규모에 513억원을 들여 삼성현역사문화공원을 만들었다. 팔공산 갓바위는 한 해 500만명 이상의 기도객과 등산객이 찾는 명소다. 복사꽃이 피는 반곡지는 요즘 눈부시다.

한 해 500만명이 찾는 팔공산 갓바위

일요일인 지난 9일 오전 10시. 경산시 와촌면 갓바위 주차장은 이른 시각인데도 빈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부처님께 바칠 공양미와 초를 파는 가게가 이곳이 기도사찰임을 암시한다. 경남 창원에서 온 이모씨(48)는 “수험생인 아들 합격을 기원하기 위해 왔다”며 큼지막한 초 두 개를 샀다. 주차장에서 오르막길을 10분 정도 가면 팔공산 선본사가 나온다. 조계종 직영사찰이자 갓바위를 관리하는 절이다. 선본사를 나와 반대편 금륜교를 지나면 갓바위로 오르는 산길이 시작된다. 갓바위를 오르기 위해서는 대구쪽 길과 경산 선본사쪽, 약사암을 통한 길 등 몇 갈래 길이 있는데 선본사쪽이 가장 수월해 많이 찾는다. 갓바위 정상까지는 900m. 짧은 등산로지만 가파른 경사로와 계단이어서 웬만한 성인들도 오르려면 숨이 찬다. 몸이 불편해 지팡이도 모자라 기어서 오르는 어르신도 보인다. 젊은 사람들은 20~30분이면 오를 길이 한 시간이 더 걸리지만 이들에게는 갓바위 부처에게 꼭 가야 할 이유가 있다. 성심을 다해 정성껏 빌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전설이 130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기 때문이다. 갓바위는 중생의 고통과 병을 치유해 주는 대표적인 성지가 됐다.

갓바위는 신라 선덕여왕 7년(638) 의현대사가 어머니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조성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종하 경산시 문화관광과 관광진흥팀장은 “한 해 500만~600만명의 기도객과 등산객이 찾는다”고 말했다. 입시철에는 전국 각지에서 전세버스로 온 단체 기도객들로 붐빈다.

끊이지 않고 기도객 발길

대한불교 조계종 발표에 따르면 선본사의 지난해 총수입은 101억원을 넘었다. 이 가운데 갓바위의 불공 수입만 41억원에 달한다. 선본사 일반 수입(70억400만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여서 갓바위의 영험함에 대한 불자들의 믿음을 대변해 준다. 갓바위 정상에는 기도객이 시주한 쌀을 아래로 내려보내기 위해 파이프를 설치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레일을 만들어 쌀과 양초를 실어 나른다. 갓바위 바로 아래 공양간에서는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쉬지 않고 기도객들에게 절밥을 내준다.

공양간과 종무소 산중에 있는 3층 석탑을 지나 마지막 계단을 올라서면 갓바위로 불리는 관봉 석조여래좌상이 나타난다. 250㎡ 정도의 갓바위 정상에는 기도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해발 850m에 있는 높이 5.48m의 화강암으로 된 석조불상이다. 여러 개의 바위로 병풍처럼 둘러싸인 공간에 불상과 대좌를 하나의 돌에다 조각했다. 결가부좌에 왼손은 약병을 쥐고 있고, 오른손은 마귀를 굴복시킨 모양인 항마촉지인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커다란 육계와 소발, 방형에 가까운 원만한 얼굴에 큼직한 이목구비를 갖췄다. 이마와 머리카락의 경계선이 칼로 베어낸 듯 예리하며 눈썹 사이에는 백호가 선명하게 돌출돼 있다. 인중과 코 주위가 깊게 조각돼 있고 입을 굳게 다물고 있어 근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삼성현을 기리는 역사문화공원

경산IC에서 13㎞ 지점. 경산 시내에서 자인 용성 남산방면으로 가다 상대온천으로 들어가는 925번 도로로 3분만 더 가면 삼성현역사문화공원이 나온다. 입구에는 한국국학진흥원장을 지낸 김병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장이 쓴 ‘삼성현을 기리는 뜻’이라는 비가 서 있다. 인도나 중국과 달리 종파를 초월한 진속불이의 생활불교와 통불교의 모습을 띠는 것은 원효성사의 일심무애(一心無碍)사상이 민중에 토착화했기 때문이며 수기치인(修己治人)의 학문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린 것은 설총이 이두를 집대성하고 오경을 우리말로 해석해 가능했다. 우리 민족의 얼인 홍익인간 정신은 고려 일연선사가 삼국유사를 저술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 삼대사상을 우리에게 접목시켜준 고마운 세 분이 모두 오늘날 학원도시인 이곳 경산 출신이라고 써놓았다. 국내외 30여개 기관에 흩어져 있던 삼성현 관련 유물과 자료를 한자리에 모았다.

사진 찍기 좋은 반곡지

경산시 남산면의 반곡지는 사진 찍기 좋은 녹색 명소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곳이다. 4만9500㎡의 넓은 못으로 복사꽃이 피는 4월에는 수많은 사진작가가 찾는다. 아름드리 버드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물에 가지가 닿아 있는 왕버드나무는 수령이 300년이 넘는다. 수면에 비치는 나무의 반영은 한폭의 수채화다. 경산의 축제로는 단오를 전후해 열리는 경산자인단오제가 유명하다.

경산=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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