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법에 막혀…'규제 피난' 떠나는 스타트업
원격의료 국회 문턱 못넘고
생명윤리법 강화 등으로 사업은커녕 연구조차 못해
미국·일본, 유전자·줄기세포 등 차세대 의료연구 활발한데
국내선 데이터 활용도 못해 바이오헬스기업 내쫓는 꼴
[ 이지현 / 임락근 기자 ]
재활치료기기를 개발하는 네오펙트는 미국에서 재활환자가 집에서 원격으로 담당 의사의 진료를 받는 서비스를 연내에 시작할 계획이지만 국내에서는 서비스를 포기했다. 원격의료가 불법이어서다. 쓰리빌리언도 4000종 이상의 희귀질환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를 오는 5월 출시할 계획이지만 서비스 대상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생명윤리법이 유전자 검사 대상을 탈모 비만 혈당 등 12종으로 제한하고 있어서다. 헬스케어, 유전자 치료제 등에 대한 엄격한 규제로 국내 바이오헬스기업들이 해외로 ‘규제 피난’을 떠나고 있다.
◆1163개 규제에 눌린 바이오산업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된 1만5312건의 규제(2014년 기준) 가운데 바이오 분야 규제는 1163건에 이른다. 이 중 보건의료 분야 규제는 553건이다.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법안은 의료계의 반대로 10여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고 황우석 사태 이후 생명윤리법이 강화되면서 미국 일본 등에서 허용된 신선 난자 연구조차 막혀 있다.
낡은 규제도 여전하다. 인공지능(AI) 기반의 의료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가 생산시설이 없다는 이유로 CD 생산업체로 인증을 받는 사례도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소프트웨어 인증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어서다. 식약처의 판매 허가를 받았더라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서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지 못한 의료기기는 병원에서 사용할 수 없다. 환자 동의를 받았더라도 병원에서 진료비를 받으면 불법이기 때문이다.
◆의료 빅데이터 활용도 어려워
의료 빅데이터도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관련 규제 법만 의료법, 건강보험법, 개인정보보호법, 생명윤리법, 의료기기법 등 다섯 개가 넘는다. 의료정보에 대한 기준도 모호하다. 병원에서 재는 몸무게는 의료정보지만 집에서 재는 몸무게는 불명확하다. 이명화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유전정보나 신체정보, 건강정보를 바탕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가 중지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산업 발전 속도에 맞춰 규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신수용 경희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헬스케어산업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것은 규제 때문”이라며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안 되는 것만 정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규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산발적으로 흩어진 의료 데이터를 한데 모아 분석하면 여러 질환의 연관성, 약물 부작용, 유전자 연구 등을 통해 질병을 예측하고 극복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며 “국내에선 지나친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차세대 의료 속도 내는 美·日
반면 미국 일본 등에서는 유전자나 배아줄기세포 등 차세대 의료 연구가 활발하다. 기존 치료제로는 고칠 수 없는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모계 유전병을 막기 위해 엄마 두 명에 아빠가 한 명인 세 부모 아이가 태어났다. 중국에서는 지난해 4월 유전자 교정으로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바이러스가 침입할 수 없는 면역 수정란을 만들었다.
원격의료 도입도 활발하다. 미국 일본 독일 중국 등에서는 원격의료 서비스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산간오지뿐만 아니라 대도시인 도쿄에서도 원격진료가 이뤄지고 있다. 이병건 종근당홀딩스 부회장은 “한국이 바이오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줄기세포, 유전자 연구 등에 힘을 쏟아야 한다”며 “생명윤리법 개인정보보호법 등 연구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지현/임락근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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