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환 증권부 기자) 세계적 거장인 왕가위 감독의 수작으로 통하는 ‘아비정전’은 1990년 12월22일 국내 개봉했습니다. 우울한 청춘들의 자취를 뛰어난 영상미로 그려낸 이 영화의 장르는 액션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홍콩 느와르’ 돌풍이 불던 때였기에 배급사는 흥행을 위해 이 영화를 액션물로 포장했습니다. 당시 아비정전 포스터에 ‘어깨 걸어 굳게 맹세한 청춘의 피울음’이라는 글귀까지 달렸습니다. 실망한 관객들은 상영 도중 극장을 나와 환불소동을 벌일 만큼 냉담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영화는 개봉 2주 만에 간판을 내렸습니다.
이 저주받은 걸작이 지난달 30일 영화관 체인 ‘메가박스’에서 재개봉했습니다. 영화배우 고(故) 장국영의 14주기를 기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관객으로부터 큰 인기를 받지는 못하는 듯했습니다.
기자가 개봉관을 찾은 날 객석 174개 가운데 자리를 채운 곳은 10여석에 불과했습니다.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다양한 영화를 상영하겠다는 메가박스의 의지가 읽힙니다. 물론 일부 흥행작에 개봉관을 몰아준다는 비판을 의식한 ‘요식행위’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점을 고려해도 지금까지 수십차례 주목받지 못한 걸작을 재개봉한 메가박스의 시도는 호평받아 마땅합니다.
종합식품기업 아워홈은 지난해 6월 30억원을 출자해 세탁업체인 ㈜크린누리를 세웠습니다. 크린누리는 아워홈 사업장에서 나오는 작업복과 주방용품 등 세탁물을 수거해 세척하는 업체로 지난해 2000만원 가량의 순손실을 냈습니다.
아워홈이 크린누리를 세운 것은 장애인 근로자를 채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워홈은 지난해 6월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함께 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을 설립하기 위한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자회사형 표준사업장 제도는 장애인 의무고용비율(민간기업 2.7%)을 준수하기 쉽지 않은 기업이 자회사를 세워 장애인을 채용하면 이를 모회사의 장애인 채용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입니다. 장애인 의무고용비율을 지키기 위해 손실을 감수하는 아워홈의 결정이 신선해보입니다.
물론 손실을 내면서 사회적 기여 활동을 하는 기업만이 좋은 회사라는 말은 아닙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고용을 늘리고 세금을 많이 낸 덕분에 우리도 과거보다 윤택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갈수록 영업 환경이 팍팍해지고 경영 변수도 늘어나는 가운데 내린 결정인 만큼 메가박스와 아워홈의 시도는 유난히 돋보입니다.(끝) /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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