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대선주자들이 대학 입시에까지 공약을 내놨다. 정시모집 확대론이 그렇다. 겨우 정착돼가는 입시제도의 틀을 또 흔들 심산이다. 문재인이 대표적이고, 안희정 이재명도 같은 주장을 했다. 먼저 드는 걱정이 침소봉대, 갈등증폭, 본말전도에 능한 한국 정치권의 오랜 관행이다. 정치가 개입한 아젠다는 여론의 바다에서 그렇게 곧장 산으로 가버리곤 했다. 토룡도 진짜 용으로 만드는 재주다.
정시 비율 문제는 대통령의 아젠다로는 너무 세세한 사안이다. 대학 자율로 정할 교육 현장의 각론이다. 더구나 수능시험 위주의 정시가 학생부 전형으로 대표되는 수시에 비해 공정하고 사교육 부담도 덜하다는 이들의 전제도 틀렸다. 오히려 정시가 ‘강남’에 유리하고, 사교육을 부추길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많다. 수시가 지방 학생에 유리했다는 자료도 적지 않다. ‘공정’을 내건 또 하나의 갈등조장형 이슈지만 빗나간 소재다.
타깃지향형 '입시 게리맨더링'
더 큰 문제는 이런 공약의 치명적 결점이다. 특정 계층을 때리겠다는 타깃지향형 규제는 안 그래도 널렸다. 사회를 대립적 구도로 몰아가는 선동 정치 탓이다. ‘헬조선’ 논리에 편승해 강남 대 비(非)강남 구도를 만들어봤자 ‘입시 게리맨더링’밖에 더 나올 게 없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일감 몰아주기 제재 강화 움직임도 본질적으로는 같다. 타깃설정형 디테일 규제라는 점에서 그렇다.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대상을 ‘총수일가 지분율 30% 이상’에서 ‘지분율 20% 이상’으로 확대하자는 논거가 영 부족하다. 지분이 19%여서 예외되는 기업이 나오면 그때는 10%로 바꾸자고 할 텐가. 규제가 도입된 지도 겨우 3년 됐다. 공정경쟁의 행정까지 좌편향된 선거판의 신흥 권력에 코드를 맞춘다면 절망적이다.
법도, 행정규제도 보편적이어야 한다. 일반 원칙으로의 규율이어야 한다. 특정 그룹을 목표로 삼고, 그에 맞춰 법을 만들고, 추격하며 법망을 계속 수선해가는 식은 곤란하다. 행정에도 기준선은 필요할 테지만 보편타당성, 예측가능성, 일관성이 생명이다. ‘재수 없이 걸렸다’는 것보다 더 나쁜 게 ‘나만, 우리만 겨냥한다’는 판단이 들게 하는 법이다. 이런 규제 법규가 많은 데서 사회적 안정이, 통합이 가능할까. 포지티브 섬은커녕 네거티브 섬의 사회로 인도할 것이다.
디테일 규정 늘면 악마도 많아져
보복과 응징의 선동 정치가 미세 규제를 양산한다. 상생의 길이 아니라 그 반대다. ‘5·18’ 관련자에게 가산점을 줘 ‘신(新)금수저론’을 일으킨 것이나 ‘귀족노조’들이 일자리를 세습하는 조항을 단체협상에 끼워넣은 것은 그 역(逆)의 타깃지향형 우대 독소이겠지만 본질은 다를 바 없다. 디테일이 오히려 핵심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디테일 규정이 많아질수록 악마가 깃들 공간이 넓어진다는 점은 늘 진리다. 보편타당한 큰 원칙이라야 시빗거리도 없다. 일반적 경쟁원리, 시장의 자율기능, 가격경매의 배분 원칙이 빛나는 것도 그런 연유다.
갈등에 편승하다 보니 갈등을 부채질해야 하는 뺄셈의 정치가 됐다. 통합을 외치지만 행동은 그 반대인 게 한국형 정치다. 정시 확대나 일감 규제는 한 단면이다. 선동과 갈등 조장에 매달리다가는 사회적 격차도 영영 못 줄인다. 간섭의 유혹과 개입해 달라는 숱한 요구들을 이겨낼 때 비로소 큰 줄기가 보일 것이다. 정치는 어디든 개입할 수 있고, 얼렁뚱땅 만든 법 하나면 무엇이든 통제할 수 있다는 인식이야말로 적폐 중의 적폐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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