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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병석의 데스크 시각] 고삐 풀린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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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병석 산업부장 chabs@hankyung.com


선거 때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은 피할 수 없다. 대중의 표를 얻어야 하는 민주주의 선거에선 필연적이기도 하다. 지금 대선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어느 대선보다 주자가 많다 보니 포퓰리즘 공약 경쟁까지 붙어 있다.

부실 가계부채 탕감(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10년 일한 국민에게 1년간 유급휴가(안희정 충남지사), 농어민·노인·청년에게 연 100만원 기본소득 지급(이재명 성남시장), 중소기업 취업자에 대기업 80% 수준 임금보장(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국민연금 최저 수급액 인상(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등 셀 수도 없다.

이런 공약을 실천하려면 문재인 27조원, 이재명 61조원, 안철수 6조원, 유승민 8조원이 필요하다는 분석(오정근 건국대 교수)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대개 이런 공약은 집권 후 ‘공약(空約)’이 된다는 점이다. 재원 마련이 불가능해서다.

대선주자 인기영합 행동 나서

그러나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버린 포퓰리즘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침몰하는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구제금융이 그렇다. 대선주자들은 한목소리로 “대우조선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망이 없으니 정리하자’고 한 사람은 없다. 수만명의 근로자와 지역주민들의 표를 의식해서다. 대선주자들의 승인을 받은 금융위원회는 “더 이상 대우조선 지원은 없다”던 방침을 손바닥 뒤집듯 바꿔 수조원의 혈세를 또 투입하기로 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가 지난주 ‘정무적 합의’를 한 근로시간 단축도 그렇다. 현재 주당 최대 68시간인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면 중소기업(8조6000억원)을 포함해 기업들에 연간 12조원의 인건비 부담이 추가된다. 기업 경쟁력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그럼에도 대선주자들은 근로시간 단축을 지지한다. 문 전 대표는 “일하는 시간은 줄이되 임금은 줄이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노동계의 표를 무시할 수 없어서다.

대선주자들은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겠다는 동의서에도 지난주 서명했다. 시민단체 환경운동연합이 요구한 동의서엔 “건설 초기단계인 신고리 5·6호기 등의 건설을 중단하고, 신한울 3·4호기 건설 계획도 백지화한다”고 돼 있다.

정부의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5~2029년)의 근간을 흔든 처사다. 전력 생산단가가 가장 싼 원전을 더 이상 짓지 않으면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그 진실은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표 때문에 쪽박 깨면 안 돼

안타까운 건 이런 포퓰리즘적 행동에 이성적 제동장치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통령 탄핵으로 야당을 견제할 책임있는 여당은 사라졌다. 지난 대선 때 “각 당 후보가 내건 공약을 다 지키려면 국가 재정이 파탄날 것”이라며 저항하던 관료들은 과도정부에서 눈치만 보고 있다. 정치권의 포퓰리즘 입법을 막을 최후 보루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포퓰리즘의 고삐가 풀려버린 꼴이다. 끝은 뻔하다. 그동안 어렵사리 일궈온 경제 시스템은 파괴되고, 성장은 역주행할 것이다. 다급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주 각 정당을 돌며 “시장경제 틀만은 지켜달라”고 요청했다. 제발 표 때문에 쪽박만은 깨지 말아달라는 절절한 호소다. 쪽박이 깨지면 결국 배고픈 사람은 국민이다.

차병석 산업부장 chab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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