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없는 날 유휴공간 시민에 무료개방
장충체육관엔 어린이 놀이방 조성키로
전국 확산 가능성…벤치마킹 하는 곳도
서울월드컵경기장 서문 아래엔 ‘특별한 문’이 있다. 관중석이 아닌 경기장 내부로 통하는 문이다. 축구 경기가 열리는 날은 VIP와 기자, 구단 직원 등 경기 관계자들이 출입한다.
최근 이곳은 경기와 관계없는 낯선 손님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24일엔 20여명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경기가 없는 날 축구장에 들어가려는 이들의 목적은 하나다. “스터디룸은 어떻게 가요?”
◆ 경기장 쉬는 날 스카이룸→스터디룸
서울시가 체육시설 유휴공간을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바꿔가고 있다. 서울시설공단 월드컵경기장운영처는 이달부터 서울월드컵경기장 4층 스카이룸을 비롯해 교육장, 세미나룸 등 36석을 스터디룸으로 개방 중이다.
스터디룸은 서울시공공서비스예약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 가능하다. 경기나 행사가 없는 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사이 1인당 하루 최대 8시간까지 사용할 수 있다. 사무실이 따로 없는 프리랜서, 스터디룸 비용이 부담스러운 학생들에겐 좋은 대안이다.
한 대학생문학회 회원 16명과 이곳을 이용한 유영훈 씨(20·가명)는 “우리 모임 정도의 인원이 합평회를 열기 위해 일반 스터디룸을 대여하면 적어도 10만원은 든다”면서 “웅장한 축구장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도 좋지만 아무래도 무료라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웃었다.
김혁 씨(21·가명)는 “다른 문화시설들은 자체 행사가 우선이어서 쫓기듯 나온 적이 많다”며 “그런 부담 없이 신청한 시간만큼 사용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공단은 다음 달까지 스터디룸을 시범운영한 뒤 5월부턴 정식운영에 나설 계획이다. 월드컵경기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FC 서울 경기와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 공연 등 행사가 열리는 날을 제외하면 운영일 수는 연간 200일이 넘을 전망이다.
정식운영에 앞서 이용객 대상 설문조사를 통해 접수된 불편도 최대한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편의를 높이기 위해 예약제를 없애고 수시방문제를 적용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 체육시설 다목적공간 활용 사례 늘 듯
월드컵경기장 스터디룸은 대형 체육시설의 ‘놀고 있는 공간’을 개방해 활용한 첫 사례다. 대부분의 지자체 체육시설 내 다목적 공간은 대관으로만 운영되거나 아예 개방되지 않고 있다.
변화는 작은 관심에서 출발했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카공족’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이수영 월드컵경기장운영처 운영팀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이 팀장은 “학생들은 공부할 곳이 없어 카페로 몰리는데 카페 입장에선 매장에 죽치는 학생들이 골칫거리”라며 “경기장에 남는 공간을 활용하면 사회적 문제를 해소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이 팀장의 제안을 박정우 월드컵경기장운영처장이 수용하면서 스터디룸이 탄생했다. 박 처장은 더 적극적이다. 그는 “공부할 공간이 모자라다는 건 일자리가 부족한 것만큼 중요한 문제”라며 “장충체육관에도 스터디룸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장충체육관 역시 월드컵경기장운영처가 관리한다. 4월부터 이곳 다목적실 2곳은 각각 스터디룸과 중구 관내 유아 놀이방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박 처장은 “고정비가 소요되지만 놀고 있는 시설이 있다면 시민 세금을 낭비하는 것”이라면서 “다른 곳에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작은 실험은 전국적으로 확산될 가능성마저 보이고 있다. 최근 대전시설공단 직원들이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다녀갔다. 스터디룸 운영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서다.
대전시 관계자는 “충분히 참고할 만한 사례였다”면서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스터디룸을 운영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형진 한경닷컴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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