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윤선 산업부 기자) “너 공부 열심히 해서 의사 돼야 한다.”
낮은 의료 수가, 열악해지는 근무 환경 탓에 의사가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도 많이 나오지만 아직도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의사 돼라’는 얘길 많이 한다. 아픈 사람을 고쳐주는 보람된 직업이기 때문일까? 대부분은 아닐 것이다. 의사는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고 돈도 많이 벌기 때문일 것이다.
왜 의사는 사회적 지위가 높고 돈도 잘 벌까. 의료 산업 전반에 대한 구조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환자를 위한 상품은 여러 가지가 있다. 약, 병원, 건강검진센터, 각종 의료기구 등등. 환자는 이런 것을 어떻게 살까. 광고 등을 통해서 직구매 하는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 의사를 통해서 산다. 일반인은 의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의사는 거대한 의료시장과 수요자인 환자를 이어주는 ‘게이트웨이’인 셈이다.
환자란 말 그대로 아픈 사람이다. 의사는 이 아픔을 치료해 줄 수 있기 때문에 게이트웨이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수요자의 정의가 바뀐다면 어떨까. 의료시장의 수요자가 ‘아픈 사람’에서 ‘지금은 건강한데 앞으로도 안 아프고 싶은 사람’으로 바뀐다면 누가 게이트웨이역할을 하게 될까. ‘스마트벨트’를 만드는 웰트의 강성지 대표는 다가올 ‘예방의학’ 시대의 게이트웨이를 선점하려 하고 있다.
◆예방의학이 진짜 의사가 할 일
강 대표는 의사다. 의사인데 조금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민족사관고를 다니다가 스마트가로등을 고안해 대통령상을 받았다. 덕분에 고교를 조기 졸업하고 의대로 갔다. 대학 졸업 뒤 남들 다 가는 인턴 대신 보건복지부 건강관리서비스 시범사업 파견 근무를 지원했다. 이걸로 병역을 해결한 뒤에는 덜컥 창업을 했다. 밖에서 일정 위치까지 걸어가면 음료 쿠폰 등을 주는 회사였다. ‘포켓몬 고’와 비슷한 컨셉이다. 그 다음에는 잠깐 인턴으로 일하다가 돌연 삼성전자에 들어가 헬스케어 전략을 짰다. 입사한지 이틀만에 삼성전자의 사내벤처 프로그램인 ‘C랩’ 공고를 보고 지원해 당선된 뒤 스핀오프 한 것이 지금의 웰트다. 왜 남들처럼 인턴 마치고 종합병원으로 들어가든가 혹은 개업을 하지 않고 복잡한 길을 선택했을까.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는 의사로서 ‘사명감’ 이다. “진짜 의사의 역할은 치료보다는 건강을 유지시켜서 죽음을 늦추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아픈 다음에야 환자를 만났죠. 질병에 이르지 않게 하는 예방의학이 진짜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강 대표는 이에 대한 지식을 쌓기 위해 현재 보건학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다.
둘째는, 사명감을 차치하고라도 세상이 그렇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차병원이 만든 ‘차움’같은 예방의학센터가 생기고 있는 게 대표적 증거다. 강 대표는 빅데이터와 머신러닝이 예방의학의 시대를 앞당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심전도가 지금은 흔해졌죠. 근데 심장의 움직임을 그린 곡선을 보고 심장 질환을 알아내기까지는 ‘휴먼러닝’으로 100년의 시간이 필요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머신러닝의 시대가 왔죠. 데이터만 있다면 금방 해석할 수 있어요.” 즉 ‘질병의 징후’ 들에 대한 데이터만 있으면 징후를 예방하는 방법을 찾아내기가 훨씬 쉬워졌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의사’라는 직업이 곧 사라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알파고’가 바둑으로 이세돌을 이겼죠. 진단은 바둑과 알고리즘이 매우 비슷합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수를 둡니다. 헬스장 가는 것도 한 수고, 담배를 피는 것도 한 수죠. 이 수들의 종합적 결과로 승부(질병, 죽음)가 갈립니다. 레코드만 쌓이면 알파고가 의사보다 훨씬 더 원인과 치료방법을 잘 진단할 수 있어요.”
◆“인공지능 시대에는 의사가 없어질 수도 있다.”
처음 창업도 예방의학의 개념으로 접근했다. 사람들을 밖에서 움직이게 해 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다할 유인책도 없었고, 사업모델도 마땅치 않았다. 보기 좋게 실패했다. 강 대표는 예방 의학 시대에 환자와 의료산업을 연결하는 게이트웨이가 되자고 계획을 바꿨다. 그러려면 뭘 해야 할까. ‘질병의 징후’ 들에 대한 데이터를 모아야 했다. 물론 그 데이터들은 셀 수 없이 많고 모으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이 중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모을 것인가. 강 대표는 복부와 관련된 데이터를 일단 모으자고 결정했다. 수단으로는 복부를 감싸는 벨트에 삼성에서 배운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더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웰트의 스마트벨트다.
벨트를 차면 걸음 수와 앉아있는 시간을 벨트가 체크한다. 밥을 많이 먹어 벨트 구멍 위치를 바꿀 경우 과식으로 인식한다. 이런 데이터를 종합해 웰트 앱을 통해 상태를 알려준다. 일일이 데이터를 입력하지 않아도 생활습관을 전반적으로 진단해 준다는 측면에서 아주 초보적인 ‘주치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복부를 보면 현대인 질병 상당부분을 예방할 수 있다.
왜 가장 먼저 복부를 선택했을까. 현재 웰트는 스마트벨트를 통해 과식 빈도, 걸음 수, 앉아 있는 시간 등의 데이터를 모은다. 좀 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 화장실에 앉아있는 시간 등 10여개 데이터를 모을 수 있다. 이 같은 복부 관련 데이터들은 고혈압, 당뇨, 치질 등 현대인들의 주요 질환을 예측하는 핵심 데이터다. 즉 복부 관련 데이터를 모아놓으면 가장 큰 예방의학의 게이트웨이를 선점할 수 있다.
기자는 인터뷰 전 웰트의 약점을 둘로 꼽았다. 첫째, 스마트벨트는 너무 베끼기 쉽다는 점이다. 벨트에 몇가지 센서만 붙이면 되는데 중국에서 일주일이면 그대로 만들 수 있다. 이에 대해 강 대표는 “헬스케어 비즈니스는 무조건 먼저 시작해서 데이터를 많이 모아놓은 사람이 승자”라고 강조했다. “동네에서 병원을 개업할 때 그냥 맨바닥에서 개업하기 보다는 이전에 있던 병원을 물려받아 그 진료차트를 모두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초진 환자를 모으기 보다는 재진 환자를 모으는 편이 훨씬 쉽거든요. 의학은 데이터가 중요한 시장입니다.”
◆헬스케어는 데이터를 먼저 모은 사람이 승자
기자가 꼽은 웰트의 두 번째 약점은 삼성전자 등 거대 IT기업이 이미 수년전부터 스마트워치를 통해 건강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도 그들이 훨씬 많이 갖고 있다. 그걸 잘 활용하면 당장 웰트 같은 스타트업을 밀어낼 수 있지 않을까. 강 대표는 두 가지 이유를 들어 기자의 공격을 방어했다. “첫째, 스마트워치에서는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유용한 데이터를 모을 게 별로 없어요. 기껏해야 심박수나 운동량인데 그걸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요. 삼성전자 등이 웨어러블 기기로 ‘시계’를 먼저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그들이 헬스케어 기업이 아닌 IT기업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증빙입니다. 스마트워치는 현재 스마트폰의 보완재로 쓰일 뿐이지 예방의학을 위한 기기로 쓰이진 않고 있어요.
둘째, 데이터가 있어도 그걸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건 제가 삼성에서 일해 봐서 잘 압니다. 저처럼 의사면서 보건학에 대한 지식도 있으면서 IT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있어야 예방의학 헬스케어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정말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꼭 데이터의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에 대한 데이터를 얼마나 오래 모았느냐가 의학에서는 더 중요합니다.”
◆벨트 다음 제품은 심전도, 체온 측정하는 이어폰
웰트는 현재 삼성물산 계열인 빈폴과 협업해 빈폴 매장에서 스마트벨트를 팔고 있다. 삼성디지털프라자 등 IT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조만간 판매를 개시한다. 명품 브랜드에서도 협업 요청이 있었지만 “아직 50만원 넘게 돈을 받을만한 제품 및 시스템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일단 미뤄뒀다고 한다. 일본의 비쿠카메라, 소프트뱅크 등 IT 매장에서도 최근 판매를 시작했다.
다음 아이템은 이어폰이다. 역시 예방의학의 관점에서 고른 것이다. 인이어(in ear) 이어폰의 경우 피부와 직접 닿는다. 이를 통해 체온, 심전도 등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체온과 심전도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게 강 대표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열이 난다’고 느낄 때는 이미 열이 38도 이상일 때가 많다. 이 때는 병원을 가거나 월차를 내고 집에서 쉬어야 한다. 하지만 37도를 넘어갈 때 쯤 이어폰이 “비정상적으로 체온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조금 쉬시거나 물을 드세요”라고 알려주면 병원 가기 전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체온으로는 여성의 생리주기 같은 것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 이어폰은 스마트폰에 번들로 넣기 위해 주요 업체들과 얘기 중이라고 한다. 많은 데이터를 모으는 것이 승부의 관건이니 만큼, 하나 하나 파는 것 보다는 삼성 LG 등 대형 업체와 협업해 번들로 넣는 것이 훨씬 낫다.
◆글로벌 AI업체와 협업할 것
웰트의 수익모델은 1차적으로는 제품 판매다. 벨트 등을 팔아서 돈을 번다. 두 번째는 인앱 결제와 광고다. 위에서 설명한 ‘게이트웨이’ 역할이다. 열이 오르려는 사람에게 주변에 영양제를 놔 주는 병원이나, 차처럼 편하게 마실 수 있는 가벼운 해열제 광고를 전달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글로벌 AI 업체들과 협업을 꿈꾸고 있다. 웰트가 확보한 데이터와 이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에 머신러닝을 더하면 정말 ‘의사’를 대체할 수 있다는 게 강 대표의 구상이다. “아마존, 구글 같은 AI 클라우드 업체들이 데이터 모으기에 혈안이 돼 있지 않습니까. 지금 웰트처럼 의학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다양하게 모으는 업체는 글로벌에서도 거의 없습니다. 결국 웰트는 그들이 욕심낼 만한 회사가 될 겁니다.” (끝) / inkli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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