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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전패'는 면한 한국…졌지만 박수 받은 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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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타고투저·스트라이크존 등 숙제 남겨
한국 응원단, 대만 선수들에게도 아낌없는 박수




불방망이의 발화점이 높아서였을까. 결국 최악은 피했다. 후배들을 위해 본선 직행 티켓은 남겨놓자던 김인식 감독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한국은 9일 서울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제4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A조 3차전에서 대만에 11 대 8 역전승을 거두며 1승 2패로 대회를 마쳤다. 대만의 거센 추격에 사상 첫 전패 탈락 직전까지 갔지만 양의지의 연장 10회 결승 희생플라이와 김태균의 쐐기 홈런에 힘입어 4시간에 육박하는 기나긴 승부를 마쳤다.

이날 양팀은 30안타를 주고받는 난타전을 펼쳤다. 경기 초반 한국이 6 대 0까지 앞서나갔을 땐 낙승이 예상됐다. 하지만 야금야금 추격하던 대만에 따라잡히며 짜릿한 ‘단두대 매치’가 됐다.

탈락이 확정된 팀끼리의 대결이었지만 양팀 선수들 모두 꼴찌를 면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면서 경기는 흥미진진하게 전개됐다. 팬들이 원하던 재미있는 경기가 한국의 마지막 일정에서야 나온 것이다. 한국 응원단은 대만의 호수비가 나올 때도 기립박수를 보내주는 등 승부를 떠나 경기 자체를 즐겼다.

한국은 1회초부터 선두타자 민병헌이 2루타를 치고 나갔다. 1사 이후 박석민이 민병헌을 홈으로 불러들이면서 경기는 순식간에 1 대 0이 됐다.

승부는 ‘빅 이닝’이 된 2회초에 갈리는 듯했다. 한국은 두 번의 만루를 만들어 내는 등 타자일순하며 대만 마운드를 맹폭, 대거 5점을 추가했다.

1사 이후 양의지와 최형우가 연속 안타로 대만 에이스 천관위를 강판시켰다. 대만은 궈진링을 등판시키며 경기 초반부터 원투펀치를 가동했다. 하지만 궈진링은 제구에 난조를 보였다.


김하성의 볼넷과 서건창이 2루타로 2점을 추가한 한국은 민병헌의 희생플라이와 이용규의 적시타까지 보태 점수를 5 대 0으로 만들었다. 손아섭의 타석 땐 대만의 실책까지 겹쳐 6 대 0이 됐다.

양의지는 좌익선상으로 뻗는 대형 타구를 날렸지만 대만 좌익수 장즈하오가 다이빙 캐치로 잡아내며 긴 이닝을 마무리했다. 몸을 아끼지 않은 수비에 한국 관중도 박수를 보냈다.

대만은 2회말 곧바로 반격을 시작했다. 1사 이후 민병헌의 실책성 플레이에 린이취엔이 2루까지 나갔고 연속 안타에 내리 3득점했다.

4회 부진에 빠졌던 이대호의 타격감까지 살아나며 한국이 2점을 추가하자 대만도 곧바로 린저슈엔이 2점 홈런을 터뜨리며 8 대 5로 따라붙었다.

6회말 2사 후엔 후친롱과 장즈하오가 연속 적시타로 점수차를 1점으로 좁히자 고척돔은 대만 응원단의 함성으로 뒤덮였다. 1루측 내야와 외야를 가득 메운 대만 관중은 앰프 없이도 오히려 안방의 한국 응원단을 압도했다.


한국은 7회말 강속구 투수인 장시환을 등판시키며 대만 타선을 봉쇄하려 했지만 2사 이후 연속 안타를 얻어맞고 동점을 내줬다.

이어진 8회초 공격에선 스트라이크존이 문제였다. 타자들은 WBC의 좌우로 넓은 스트라이크존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기회를 날렸다. 선두타자 이용규가 볼넷으로 걸어나갔지만 후속 박석민, 오재원, 손아섭이 모두 루킹삼진으로 물러났다.

정규이닝 마지막 역전 기회였던 9회초 2사 만루에선 이용규가 다시 타석에 섰지만 좌익수 뜬공에 그쳤다.

기회 뒤엔 위기였다. 9회말엔 끝내기 패배 직전에 몰렸다. 이현승이 선두타자 장즈시엔에게 2루타를 내줬다. 무사 2루. 안타 하나면 전패로 짐을 싸야 했다.

그러자 한국 벤치는 오승환을 등판시켰다. ‘끝판왕’은 시속 150km의 직구를 앞세워 삼진 2개를 곁들이며 완벽하게 진화에 성공했다.

승부치기까지 갈 가능성이 높아지던 연장 10회초. 1사 후 오재원이 안타는 두 팀의 희비를 가르는 순간이 됐다. 오재원의 빠른 발을 이용하기 위해 후속 손아섭의 타석 때 히트앤드런 작전이 나왔다. 대만 유격수 천용지는 베이스 커버를 위해 2루로 뛰었지만 비워둔 자리로 손아섭의 타구가 빠져나갔다. 제자리에 있었다면 병살이 되는 타구였다.

이어진 1사 1, 3루에선 양의지가 외야 깊숙한 희생플라이로 8 대 8 균형을 깼다. 대타로 타석에 들어선 김태균은 그동안의 무안타 부진을 날리는 좌중월 2점 홈런으로 쐐기를 박았다.

기나긴 승부는 오승환이 대만의 마지막 공격을 3자범퇴로 막아내면서 끝났다.

‘고척 참사’로 불릴 만큼 맥없이 무너진 대회였지만 마지막 경기에 최선을 다한 대표팀에겐 아낌없는 박수가 쏟아졌다. 지난 2경기에서 미흡한 경기력 외에도 태도 논란까지 불거져 위축된 선수들에겐 단비 같은 격려였다.

3패에 그쳤지만 네덜란드와 한국을 연이어 사지까지 몰아넣었던 대만 선수들도 박수를 받았다. 대만 응원단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타이완쨔유(台灣加油·대만 힘내라)”를 외치며 풀이 죽은 선수들을 위로했다.

한국은 귀중한 승리를 거두며 다음 대회 예선을 거쳐야 하는 수모를 면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많은 숙제를 받았다. 국제대회 기준과 차이가 심한 스트라이크존은 개정이 예고돼 당장 이번 시즌 혼란이 불가피해졌다. 스타선수 한두 명이 성적을 좌우하는 선수단이 아닌 전력이 평준화 된 선수단을 구성해야 할 필요도 생겼다. 무엇보다 태극마크의 가치를 제고해야 한다는 게 야구계 안팎의 목소리다.

전형진 한경닷컴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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