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 줄어들어 관현악단·오페라 등 공연 차질 불가피
국내 미술품 구매 중단 이어질 땐 시장 악화 불 보듯
탁구·레슬링·육상 등 비인기 종목 지원 유지될지 촉각
[ 김현석/김경갑/김희경 기자 ]
1998년 외환위기로 어렵던 시절,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US오픈에서 양말을 벗고 물에 빠진 공을 쳐내며 우승한 박세리는 국민의 희망이었다. 이런 박세리의 뒤에는 삼성이 있었다. 박세리가 1996년 미국 무대에 뛰어들자, 삼성은 외환위기 와중에도 1997년 10년간 후원계약을 맺고 계약금 8억원, 연봉 1억원을 줬다. 데이비드 리드베터를 코치로 붙여주고 코치료와 미국 내 훈련비 및 체재비를 별도로 지급했다. 마라토너 이봉주도 마찬가지다. 그는 10년간 삼성전자 육상단 소속으로 뛰며 2001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 등을 이뤄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 당선된 유승민도 20년간 삼성생명 탁구단에 몸담으며 삼성 지원을 받았다.
삼성그룹을 이끌던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이 해체되면서 문화스포츠계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삼성이 매년 수백억원을 스포츠문화 분야에 지원했기 때문이다. 삼성 관계자는 “그동안 그룹 차원에서 이미지 등을 위해 문화스포츠를 후원했지만 계열사들은 꼭 필요한 지원 외에는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유명 내한공연 줄어들 듯
삼성은 문화계에서 주로 음악과 미술을 후원해왔다. 매년 관현악단, 오페라 등 30여개 공연에 5000만~3억원을 지원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달 20일 열린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 내한공연이다. 국립발레단은 삼성화재에서 연간 지원을 받고 있다.
A오페라단 관계자는 “그동안 공연할 때마다 후원 제안서를 삼성에 내왔는데, 올해 공연은 제안서조차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규모 공연은 각종 비용 등을 감안하면 표만 팔아선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다. 그래서 삼성 등 기업 후원을 얻어 수지를 맞춰왔다. 관현악단 내한공연 등을 주관해온 빈체로 관계자는 “베를린필 같은 ‘A급’ 공연은 100% 만석이라도 비용을 충당할 수 없다”며 “기업 후원이 쪼그라든 상황에서 베를린필 같은 공연은 이제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계의 위기감도 크다. 삼성은 작년 말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 본사 사옥을 부영에 팔면서 건물 앞에 있던 플라토미술관(옛 로댕갤러리)을 폐관했다. 리움의 올해 전시계획도 김환기 회고전(4월)과 서예전(9월)만 잡아 놨다. 서울 인사동 등 화랑가에서는 미래전략실 해체가 삼성의 작품 구매 중단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삼성은 2008년 비자금 특검 수사를 받기 전 국내외 미술시장에서 연간 1000억~1500억원을 썼다. 이후 예산이 절반 이하로 줄었지만 리움은 여전히 시장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은 “삼성이 미술품 구입 등을 줄이면 작가와 화랑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시장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포츠계 한파 지속
미래전략실 해체의 빌미는 정유라 승마 지원에서 시작됐다. 이 때문에 대한승마협회장을 맡고 있던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은 지난달 28일 사임했고, 승마협회에 파견된 임직원 2명도 복귀했다. 매년 협회 운영비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회장사 후원금 지원도 중단됐다. 협회는 삼성이 철수한 뒤 새 회장사를 찾기도 힘든 상황이다.
삼성은 2015년 삼성증권 테니스단, 삼성중공업 럭비단을 해체했다. 삼성생명 탁구단과 레슬링단, 에스원 태권도단, 삼성전자 육상단과 승마단, 삼성전기 배드민턴단 등 여전히 비인기 종목 팀을 꾸려 지원하지만, 미래전략실이 없어져 계속 운영할지 불투명하다.
내년으로 다가온 평창동계올림픽도 영향권에 들어 있다. 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은 지난달 21일 “삼성은 이미 IOC와 평창 조직위원회를 후원하기로 했다”며 “최근 스캔들이 (올림픽 스폰서십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삼성은 평창올림픽의 가장 큰 후원자로 수백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추가 지원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현석/김경갑/김희경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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