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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최순실 게이트 혐오증…가열되는 '화폐개혁'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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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세 가지 형태 화폐개혁 추진
한국은 국민 공감대 있어야



정유년이 밝은 지도 두 달이 다 돼 간다. 지금까지 나타난 현상을 보면 그 어느 해에도 경험하지 못한 ‘대변화’가 일고 있다. ‘초불확실성 시대’(hyper uncertainty, 배리 아이켄그린 미국 UC버클리 교수)’다. 그중 국민 입장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변화는 각국이 유행처럼 추진하고 있는 ‘화폐개혁’이다.

신권을 발행한 국가는 의외로 많다. 미국은 20달러, 50달러, 100달러짜리를 새롭게 도안해 2013년 발행했다. 이듬해 일본은 20년 만에 1만엔, 5000엔, 1000엔짜리 신권을 선보인 데 이어 2015년에는 중국, 작년 말에는 인도네시아가 신권을 내놨다. 일부 유로 회원국도 독자통화 신권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

화폐거래 단위를 축소하는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한 국가도 있다. 터키, 모잠비크, 북한 등이 대표적이다. 작년 11월 인도는 화폐유통 물량의 86%를 차지하는 구권 500루피, 1000루피를 신권 500루피, 2000루피로 교체하는 변형된 화폐개혁 조치를 발표했다. 비슷한 시점에 베네수엘라도 화폐개혁을 했다.

고액권 발행을 중단하거나 폐지하자는 논쟁도 갈수록 거세지는 추세다. 캐나다(2000년)와 싱가포르(2014년)는 최고 권종 발행을 중단했다. 1년 전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500유로,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100달러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각 유로존과 미국의 최고 권종이다.

세 가지 형태의 화폐개혁에서 공통적인 특징은 고액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도 5만원권 도입 당시 그랬지만 ‘뇌물과 부패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겠느냐’는 반대 속에 고액권 도입의 결정적 단서가 된 거래편리 수단으로서의 화폐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액권 회수율을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미국에서 100달러 회수율은 2013년 82%대에서 작년에는 75%대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500유로는 102%대에서 85%대로 급락했다. 한국의 5만원권은 더 심하다. 지난해 5만원권 회수율은 40%대에 그쳐 미국과 유로존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고액권 회수율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퇴장’됐다는 의미다.

현재 각국 국민의 화폐생활에서 고액권뿐만 아니라 모든 권종의 법화(法貨·legal tender)가 없더라도 특별히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비트코인, 마일리지, 포인트, 디지털화폐, 지역화폐 등 각종 대안화폐가 있기 때문이다. 조만간 고액권 폐지론은 ‘현찰 폐지론’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고액권은 ‘이슬람국가(IS)’, 북한 등의 테러 재원으로 악용될 만큼 당초 우려한 부작용이 심하게 발생하고 있다. 특히 뇌물과 부패 수단으로 사용되는 점이 각국의 골칫거리다. 금융위기 이후 각국은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나 독일의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부패도지수를 보면 더 심해지고 있다.

고액권에 초점을 맞춘 화폐개혁의 성공 여부는 확연하게 구별된다. 목적을 달성한 국가는 두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하나는 신권을 발행해 구권을 완전히 대체하되, 다른 하나는 리디노미네이션은 병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 일본 등 대부분 선진국이 해당한다.

신흥국은 리디노미네이션을 결부해 신권을 발행했다. 그 후 이들 국가는 부패와 위조지폐 방지, 대외 위상 증가 등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고사하고 물가가 치솟고 부동산 투기가 불면서 경제가 더 불안해졌다. 인도의 화폐개혁 성공 여부가 아직 불투명해 보이는 것도 넓은 의미의 리디노미네이션이기 때문이다.

화폐개혁을 단행하는 것만큼 국민의 관심이 높은 현안은 없다. 특히 경제활동 비중이 높은 대기업과 부자, 권력층일수록 저항이 큰 고액권을 겨냥한 화폐개혁에 관심은 집중된다. 이 때문에 경제가 안정되고 국민 공감대가 형성돼야 고액권 발행, 축소, 폐지와 같은 화폐개혁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한국 사회 내에서 화폐개혁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5만원권을 폐지하고 리디노미네이션을 병행한 신권을 발행하자는 세 가지 형태가 모두 포함된 급진적인 화폐개혁이다.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속속 드러나고 있는 기득권층의 도를 넘어선 이기주의와 거짓말, 부정부패에 따른 반작용 측면에서 나오는 혐오증이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미국 중앙은행(Fed)의 추가 금리인상, 유럽 정치일정 등 굵직한 대외현안을 앞두고 국내 정세가 혼탁한 상황에서 급진적인 화폐개혁을 요구하거나 논의하는 그 자체가 또 다른 형태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국내 정세가 안정되고 국민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될 때 논의하고 추진해야 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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