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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선순위 가등기가 있는 물건은 리스크가 상당하기 때문에 초심자 입장에서는 함부로 응찰해서는 안 된다. 다만 가등기권자가 당해 경매절차에서 배당요구를 하거나 배당요구에 준하는 채권계산서를 제출하면 이를 담보가등기로 봐 낙찰과 동시에 말소해 주기 때문에 응찰해도 별문제는 없다. 제자 Y씨가 이 물건을 검색하며 법원문건 접수내역을 살펴 보니 가등기권자의 배당요구는 없었다. 경매매물의 권리관계를 공지하는 문건인 물건명세서에도 이 사건 가등기는 담보가등기가 아니라 소유권보전가등기라 낙찰로 소멸되지 않는다는 공지가 분명히 돼 있었다. 그러나 소유권 보전가등기라 해도 특정 경우에는 무효가 돼 말소할 수 있다는 필자의 강의내용을 기억하고 있던 Y씨는 의심의 끈을 놓지 않고 가등기 내막을 철저히 파고들었다.
Y씨는 선순위 가등기가 있음에도 이 건물에 임차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등기부에 가등기가 설정돼 있다면 보통 임차인은 권리관계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들어오길 꺼린다. 그럼에도 정상적으로 임대차계약이 체결되고 현재 임차인이 문제 없이 거주하고 있다면 이 사건 가등기는 법적으로 무효이거나 이미 실효된 가등기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문을 품었던 것이다. Y씨는 해당 부동산의 전 소유자, 채권자 등을 만나 가등기의 내막을 캐물었다. 그리고 임차인을 통해 이 사건 가등기권자가 실제로 이 사건 건물 소유자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즉 가등기권자가 사실상 이 사건 매물을 매수했지만 사정이 있어 소유 명의를 다른 사람으로 해뒀던 것이다. 법적으로는 이를 ‘명의신탁’이라고 한다. 현행법상 타인 명의로 소유권을 취득하는 명의신탁 약정은 무효이고 이 같은 명의신탁 약정에 따른 소유권이전등기를 보전하기 위해 설정된 가등기 또한 무효라는 필자의 강의를 들었던 Y씨는 주저없이 응찰했다. 가등기가 효력이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가등기권자의 측근이나 임차인이 응찰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낙찰가를 조금 높여 쓴 것이 주효해 두 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약 3800만원에 낙찰받았다.
대출이 어려운 특수물건인지라 당연히 Y씨는 잔금 전액을 현금으로 준비하고 있었지만 조심스럽게 대출도 알아봤다. 선순위 가등기나 가처분이 있는 물건은 저축은행 등 2금융권에서도 대출을 취급하지 않는다. 가등기권자가 추후 본등기를 하면 낙찰자의 소유권은 물론 은행의 저당권도 직권 말소되기 때문에 은행으로서는 무담보 대출을 해준 것이나 다름없는 위험을 부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Y씨는 경매신청서에 첨부된 판결문에 전 소유자와 가등기권자 간 명의신탁관계가 성립된다는 내용이 있어 잘만 설득하면 대출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필자가 대표로 있는 법무법인 열린 명의로 의견서를 작성해 대출 은행에 제출했다. 신중한 검토 끝에 낙찰가의 80%인 3000만원 대출이 승인됐고 이율도 법적인 하자가 없는 일반물건 수준의 저리로 결정됐다. 게다가 보증금 1000만원, 월세 40만원에 살고 있던 임차인과 재계약을 해 보증금 1000만원을 회수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실제 이 물건에 투입된 현금은 거의 없었고 매달 이자를 내고도 약 30만원 정도의 현금 흐름이 발생했다.
잔금 납부와 동시에 즉각 가등기 말소소송을 진행했다. 가등기권자도 억울했던지 변호사까지 선임하며 적극적으로 응소해왔지만 무난히 승소해 가등기는 말소됐다. 그 후 주거지를 옮기고 싶지 않아하던 임차인에게 넉넉한 프리미엄을 붙여 매각했다는 후문이다.
경매 물건 중 난도가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선순위 가등기 물건도 이렇듯 의심의 끈을 놓지 않고 철저히 조사한 뒤 응찰한다면 일반 매물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알찬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정충진 < 법무법인 열린 대표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