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의 힘
제니퍼 자케 지음 / 박아람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88 / 1만4000원
[ 이미아 기자 ]
‘제왕은 무치(無恥)’란 말이 있다. 왕에게는 부끄러움이란 없다는 뜻이다. 당나라 현종이 며느리였던 양씨를 귀비로 삼으면서 이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폭정을 일삼는 전제군주 옆의 간신들도 이 말로 왕의 전횡을 더욱 부추겼다.
왜 하필이면 군주들은 ‘무치’란 말에 집착했을까. 제니퍼 자케 미국 뉴욕대 환경연구학 교수가 쓴 《수치심의 힘》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수치심은 인간이 가진 연약한 본능이다. 수치심을 잃은 행동을 하면 사회에서 손가락질을 받는다. 그 때문에 지위가 올라갈수록 ‘부끄럽다’는 말 한마디를 꺼내기 어렵다. 그들은 그 말을 하지 않으려 발버둥치고,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자신이 속한 조직을 파괴하려고 한다. 권력자들이 가진 내면의 부끄러움을 밖으로 이끌어내려면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
저자는 “사회와 조직의 진정한 혁신을 위해선 집단 내 규범 위반자들에게 수치심을 안겨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지속적으로 협동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썩은 사과(bad apple)’라고 부른다. 썩은 사과들은 부패의 기운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시켜 결국 집단 전체를 망가뜨린다. 썩은 사과는 비단 정치인뿐만 아니라 기업, 언론, 시민 사회 등 광범위한 곳에 퍼져 있다.
저자는 썩은 사과를 골라내는 사람을 ‘폭로자’, 썩은 사과와 폭로자 간 갈등을 지켜보는 모든 사람을 ‘관객’이라고 칭한다. 이 모든 작업이 일종의 연극인 셈이다. 다만 무대가 현실이라는 것이 연극과 다른 점일 뿐이다.
저자는 ‘수치 주기 전략 극대화 방안’으로 7가지를 제시한다. 첫째로 위반 행위가 관객과 관련성이 있어야 한다. 집단 규범의 위반이 일반 시민들과 아무런 연관이 없으면, 그 위반을 적발한다 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위반 행위가 바람직한 행동에서 크게 벗어나 있어야 한다. 집단의 보편적인 상식과 위반자의 실제 행동 사이에 간극이 크면 클수록 수치심 전략의 효과는 배가된다. 셋째, 위반 행위가 정식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없어야 한다. 수치심만으로 충분한 처벌이 될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다.
넷째, 집단 내부에서 위반 행위자를 적발하는 것이다. 이 경우 공정성이 더욱 높아지고, 내부 질서 유지에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다섯째, ‘존경받는 자’가 수치심 전략의 주동자가 돼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을 만하고,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개인 또는 집단의 행동에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여섯째, 수치 주기 전략이 이익 극대화와 연결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무조건적으로 수치심을 안기기만 하면 그에 따른 부작용도 거세지기 때문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수치심 전략과 관련된 모든 행동은 양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저자는 “수치 주기 전략을 펼치는 진정한 이유는 집단과 사회 규범을 바로 잡기 위해서야 한다”며 “목적 없는 수치 주기는 그저 왕따를 만드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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