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 16장을 주문했는데요. CD는 버리고 투표권만 주시면 안될까요? CD 안에 든 투표권하고 사진, 악수권만 보내주시면 돼요."
해외구매 배송대행사이트 몰테일에 올라온 일본 인기 걸그룹 AKB48의 앨범 구매에 대한 문의 글이다. 음반을 사면 주는 '악수권' 특전을 얻기 위해 CD를 대량 구매한 후 버려 달라는 요청이다.
유통업계에서 이런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커피를 마시면 주는 한정판 다이어리를 얻기 위해 10잔이 넘는 커피를 한 번에 주문하는가 하면 캐릭터가 그려진 팝콘통을 가져가기 위해 팝콘을 잔뜩 산 뒤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한다. 바야흐로 '굿즈(Goods, 각 문화 분야의 파생 상품)'의 시대다.
24일 몰테일에 따르면 지난해 대행서비스를 통해 일본 인기 걸그룹 AKB48의 '악수권'과 '투표권'을 주문한 건수는 약 650여건, 5000개에 달했다.
이 그룹 음반을 사면 앨범에 참여하는 멤버를 뽑을 수 있는 투표권과 팬미팅 시 멤버들과 악수 할 수 있는 악수권을 준다. 이를 얻기 위해 음반은 버리고 투표권과 악수권만 보내달라는 주문이 적지 않다.
몰테일 관계자는 "AKB48의 투표권은 선거 직전 발매한 싱글CD를 구매한 소비자와 공식 팬클럽 회원, 공식 애플리케이션 유료 회원에게만 준다"며 "국내 팬들이 투표권을 얻기 위해 이런 방식의 구매 요청을 종종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유통업계에서는 굿즈를 받기 위해 본 상품을 구매하는 '주객전도' 현상이 비일비재하다.
스타벅스는 매년 연말 음료 17잔을 마시면 다이어리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한다. 현금 구매가 불가능하고 한정 수량만 제공하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
음료 17잔을 한 번에 주문해 다이어리를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 많은 음료를 마시기 어렵다면 아예 음료를 주문하면 주는 쿠폰만을 중고장터를 통해 구매하기도 한다.
최근 국내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 역시 굿즈 열풍 한 가운데 있다.
이 영화를 상영하는 메가박스 영화관이 한정 출시한 팝콘통을 얻기 위해 먹지도 못할 양의 팝콘을 산 뒤 이를 버리는 관람객들이 많다.
쓰레기통에 가득 찬 팝콘 사진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면서 일부에서는 '혼모노'(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관객) 논란까지 벌어졌다.
굿즈 구매를 위해 음식물을 버리는 행동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팝콘을 버리는 이들도 할 말은 있다. 에코백과 사인 포스터, 엽서 등을 받기 위해서는 라지 사이즈 팝콘이 기본 제공되는 콤보를 구입해야 하지만 1인 관객에게는 너무 많은 양이라는 불만이다. 영화관이 굿즈를 미끼로 매출을 늘리려는 '인질 마케팅'을 한다는 비난도 나온다.
한편 메가박스는 최근 굿즈를 별도 구매할 수 있도록 방침을 바꿨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대부분 굿즈는 미끼상품이기 때문에 단독 판매로는 수익이 크지 않다"며 "이는 연계 판매를 통해 마음에 드는 문화 상품에 통 크게 지갑을 여는 20~30대를 끌어들이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김아름 한경닷컴 기자 armij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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