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市·메트로 "국비 지원해 달라"
정부 "서울시가 알아서 할 일"
[ 마지혜 기자 ] 23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 단상에 오른 김태호 서울메트로 사장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전날 화재 사고로 서울메트로의 ‘안전불감증’이 도마에 오른 터였다.
여론이 악화된 것은 지난 22일 서울지하철 2호선 잠실새내역(옛 신천역)으로 들어오던 전동차에서 불이 났을 때 차장이 승객들에게 “객차에서 기다리라”고 방송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차내 대기 방송은 매뉴얼에 따른 정상적 조치였다”며 “해외 지하철에서도 기관사가 고장 상황을 정확히 인지할 때까지는 전동차 내에서 대기하라고 안내한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매뉴얼을 개선할 필요가 있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하겠다”고 했다.
화재는 전동차 아래의 전기 공급장치(단류기함)에서 원인 모를 불꽃이 튀면서 발생했다. 불이 난 전동차는 1990년 생산돼 올해로 28년 된 차량이다. 기대수명인 25년을 3년이나 넘겼다. 김 사장은 “2015년 정밀진단을 받고 5년의 추가 사용기간을 얻어 운행 중이었다”며 “전자 부품은 오래될수록 사고 위험이 높은 게 사실”이라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면 사고 대응 매뉴얼이 문제가 아니다. 낡은 전동차는 언제 불길에 휩싸일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서울시와 서울메트로는 8370억원을 들여 2022년까지 2·3호선 노후 전동차 620량을 교체할 계획이다. 2호선 열차의 17.4%, 3호선 열차의 12%가 ‘내구연한’을 넘긴 상태다.
하지만 시와 메트로는 노후 차량 비율이 40%인 1호선과 470량 전체가 20년이 넘은 4호선 전동차 교체는 손도 못 대고 있다. 예산 때문이다. 시와 메트로는 2·3호선 노후 전동차 교체를 위해 2014년부터 줄곧 국비 지원을 요청해왔지만 3년 연속 중앙정부에서 거절당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다른 정부부처들이 ‘시설 유지보수와 개량은 자산 소유권자인 시가 하는 게 원칙’이라고 반대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에 지원했다가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일제히 지원을 요청해오면 감당할 수 없게 된다는 항변이다.
서울시는 “국비 지원을 못 받으면 시와 메트로가 어떻게든 예산을 쥐어짜 전동차를 교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도 “다른 사업 분야의 예산을 깎는 게 순탄치 않아 노후 전동차 교체가 지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시와 중앙정부의 ‘줄다리기’에 국민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마지혜 지식사회부 기자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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