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청구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19일 새벽 5시 법원에서 기각됐다. ‘433억원 뇌물공여’ 등의 혐의 입증이 부족하다는 게 법원 발표다. 특검의 무리한 수사에 제동을 건 모양새다. 특검이 최종 목표로 삼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수사도 중대한 난관에 봉착했다.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피의자 심문 후에도 14시간의 면밀한 검토를 거쳐 기각을 결정했다. 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인 만큼 이례적으로 긴 영장기각 사유도 덧붙였다. ‘대가관계와 부정청탁 등에 대한 판단, 구체적 사실관계와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게 법원의 기각 취지다.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대통령의 지원을 바라고 최씨를 도운 게 아니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최씨 지원은 무관하다는 이 부회장의 주장을 상당부분 받아들인 셈이다.
물론 구속영장 기각을 특검 수사의 실패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특검의 과속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일반 국민으로서는 사필귀정의 영장 기각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특검에 적지않은 당혹감과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증거가 차고 넘친다’거나 ‘영장내용을 보면 기절할 것’이라던 과도한 자신감은 그대로 특검을 향해 날아가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 재판부를 설득할 실체적 진실이 아니라 언론플레이와 여론전에 몰두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증폭된다.
특검은 그 출발부터 중립성을 의심 받아왔다. 야당이 특별검사를 추천토록 하거나, 공소 제기일로부터 3심까지 일반 형사사건의 절반인 7개월 내에 끝내도록 하는 등의 조항은 위헌 논란마저 불렀다. 탄핵소추위원장인 권성동 국회 법사위원장이 “중립성을 심각하게 위반했다”며 특검법 통과를 결사반대했을 정도였다.
출범 후의 수사행태도 미심쩍은 부분이 적지 않았다. 수사내용 공표 및 누설금지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특검발 대서특필’이 잇따르고 있다. 피의사실을 무차별적으로 흘리면서 여론재판에 몰두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태블릿 PC의 진위 확인은 아예 도외시하고 과도한 압수수색과 체포를 되풀이하는 외에도 수사범위를 거칠게 확대해가는것 등은 나중에 심각한 논란을 부를 수도 있다.
특검 수사가 정치인들의 활동공간만 넓혀주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대선주자급 정치인의 입에서 ‘삼성이 권력서열 0순위’라거나 ‘역시 삼성이 대통령보다 세구나’라는 식의 저급한 말이 나오는 지경이 됐다.
특검에 부여된 목표는 관련자를 유죄로 엮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는 일이다. 그 결과 죄가 확인되면 누구라도 법이 정한 단죄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자면 균형감각이 필수적이다. 수사가 여론을 추수할 수는 없다. 법치가 아니라 정치에 몰두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부터 해소해야 한다. 특검에 대한 의구심이 점점 높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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