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피로'에 시달리는 직장인들
친구들과의 여행 사진 올렸더니
"소개팅 해달라" 동료 요구에 불편
페북에 남긴 회사 뒷담화 때문에
승진·이직의 기회 날리기도
촛불 든 후배와 태극기 든 선배
SNS에 글 올릴 때마다 눈치보여
[ 김태호/고재연/유하늘 기자 ] ‘전국의 부장님들께 감히 드리는 글.’
지난주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한 부장판사의 칼럼이다. ‘저녁 회식하지 마라’와 같은 직설적인 화법으로 전국 직장 내 상사들에게 일침을 날린 이 글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빠르게 확산됐다. 칼럼에 공감하는 직장인들이 SNS에서 ‘공유’를 누르고, ‘좋아요’를 클릭하면서다. 해당 칼럼의 공유 횟수는 무려 8000건에 달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SNS 계정을 보유하고 있다.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인스타그램 등 종류도 다양하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해 직장인 188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76.6%의 직장인이 SNS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지난주 화제의 칼럼과 같은 글을 공유하고, 자신들의 생각과 사생활을 남기면서 SNS를 즐기고 있다.
하지만 즐거운 SNS 공간도 ‘직장’과 맞닿으면 고민이 생기기 마련. 직장 동료와의 SNS에서 고통받는 김과장 이대리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특명, SNS에서 상사를 피하라
공기업에 근무하는 3년차 직장인 이주연 씨(27·여)는 최근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인스타그램 팔로우 거절하는 법’을 검색했다. 10년차 회사 선배가 갑자기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했기 때문이다. 신입사원 시절 사생활에 대한 회사 선배들의 과도한 관심에 학을 뗀 그는 이후 사생활과 회사 생활을 엄격하게 분리해왔다.
문제는 ‘청정지역’이던 자신의 SNS에 난입한 선배가 그의 사생활을 마구 공개하면서 벌어졌다. “주연씨 이번 주말에 재밌는 데 놀러 갔다며?”라는 악의 없는 말부터 “그렇게 놀았으면 일을 열심히 해야지”라는 말까지 선배의 사소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친구들과 파티를 즐기는 모습부터 점심은 뭘 먹었는지, 운동은 뭘 하는지까지 지켜보는 선배 때문에 결국 계정을 닫았어요.”
통신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양모 대리(33·여)는 페이스북을 개인적인 공간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직장 상사 및 동료들의 친구 신청을 받으면서 이것 역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일부 동료와 상사들이 페이스북에 올린 친구들의 사진을 보고 ‘소개팅 좀 해달라’는 힘든 요청을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주말에 직장 상사들이 연락해 ‘저번에 소개한 맛집 주소 좀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전모 과장(35)도 지난해부터 40~50대 부장, 차장급 상사들이 줄줄이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해와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는 이들을 ‘먼 친구’로 분류해놓고 새로 올리는 글은 비공개로 설정하는 ‘꼼수’로 이 상황들을 모면했다. 언젠가부터 이마저도 귀찮았던 전 과장은 직장 상사들의 친구 신청을 아예 무시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얼마 전 카페에서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 하는 모습을 A부장에게 들키면서 발생했다. A부장은 “페이스북에 자주 접속하면서 왜 내 친구 신청은 안 받아주냐”고 말했다. 전 과장은 “요즘 인스타그램을 자주 해서 조금 전에야 확인했다”고 임기응변을 발휘했지만 한동안 뒷머리가 찜찜했다.
SNS 공간은 직장이 아니라고요
지난해 말 이직에 성공해 30여명 규모의 중소기업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김모 대리는 요즘 생각지도 못한 회사의 규칙(?)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에 올라온 회사 게시물에 일일이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아야 한다는 것. 새해 들어 사장의 지시로 시작된 일이다. 한 달 단위로 ‘좋아요’와 댓글을 몇 개 달았는지 조사해 회사 게시판에 표로 붙여 공개하는 것은 물론, 실적이 저조한 3명은 A4 용지에 반성문을 제출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중소 정보기술(IT) 기업에 다니는 강모 과장은 사내에서 소문난 SNS 스타다. 시국과 관련된 글을 올리는 그의 페이스북 계정에는 “사이다”라는 평가와 함께 ‘좋아요’가 수백개씩 붙는다.
지난해 강 과장은 사내 뒷담화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회사 정책이나 직장 상사의 문제를 지적하는 글을 올렸더니 “동병상련을 겪고 있다” “헬조선의 회사가 다 그렇다”는 등 옹호하는 댓글이 달렸다. 그러나 이를 확인한 직속상사 박모 차장이 회사에 문제를 공식 제기했다. 박 차장은 강 과장의 글 몇 개를 그대로 캡처해 회사에 문책을 요구했다. 회사에서는 사내 정보 유출 등의 문제를 들어 강 과장을 징계했다.
증권사에 다니는 이모 과장도 ‘페이스북 스타’다. 게시글마다 100개도 넘는 ‘좋아요’가 달린다. 직장 사람들과는 아무도 페친을 맺고 있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지난해 말 페이스북 탓에 엄청난 기회를 놓쳤다. 채권 쪽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헤드헌터를 통해 더 큰 증권사로 이직을 추진하고 있었다. 승진에 연봉이 50%나 뛰는 최고의 기회였다. 임원과 사장 면접도 잘 끝났고 최종 통보만 기다리던 그는 어느 날 해당 회사 인사팀으로부터 “죄송합니다”라는 전화를 받았다. 해당 증권사는 검증 차원에서 막판에 그의 페이스북을 확인해봤고 ‘이런 사람은 채용해선 안 된다’고 결론을 낸 것. 그는 최근 페이스북 활동을 접었다.
한 회사 관계자는 “본인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회사 욕을 공공연히 하는 걸 좋아하는 구성원이 있을 리 없다”고 전했다.
반대의 상황도 있다. 한 제조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주모 대리(32)는 직장 상사의 ‘표현의 자유’ 때문에 힘들다. 주 대리는 SNS에 들어갈 때마다 김 부장의 정치적인 글에 강제로 노출된다. 심지어 김 부장은 가끔 ‘내 글을 읽어봤느냐’며 회사에서 후배들에게 공감도 강요하는 스타일이다. 주 대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좋은 글인 것 같다’고 대답하고는 뒤돌아서서 울분을 삭인다.
특히 최근 ‘최순실 사태’는 그에게 매우 힘든 이슈다. 주 대리는 매주 ‘촛불’을 들고 광화문광장에서 현 정권 퇴진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SNS에 올라오는 김 부장의 글은 ‘맞불 집회’를 찬양하는 글이 대다수다. 그는 “하지만 SNS에서 지나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직장 동료 사이에서는 강요가 될 수도 있다”고 털어놨다.
김태호 / 고재연 / 유하늘 기자 highk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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