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기=뉴욕 특파원) 5년 뒤에도 도널드 트럼프는 경제학자들을 경멸할 수 있을까. 반대로 경제학자들은 잃어버린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까.
지난 6일부터 사흘간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경제학회는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경제학의 혼란스러움이 그대로 드러났다.
전 세계에서 1만3000여명의 경제학자들이 참가해 500여개 세션이 열린 하얏트 리젠시 호텔의 맞은 편에는 시카고에서 3번째로 높은 마천루 ‘트럼프 타워’가 버티고 서 있었다. 마치 “경제학자, 너희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두고보겠다”는 투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자유무역과 세계화의 옹호자였던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대중 포퓰리즘의 공격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 역시 기존 엘리트에 대한 철저한 비판으로 일관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가 기용한 경제학자는 내각은 물론 백악관 보좌진을 통틀어 피터 나바로 국가무역위원회(NTC) 의장 단 한 명에 불과하다.
지난해 대선을 불과 1주일 앞둔 11월 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8명을 포함한 370명의 석학들은 트럼프 지지에 반대한다는 공개서한을 채택했다. 하지만 이들의 반대는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고 오히려 트럼프 지지자를 결집시키는 결과만 초래했다.
스티븐 데이비스 시키고대 교수는 경제학이 신뢰의 위기에 봉착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일반 사람들의 경제적 삶이 악화되면서 엘리트 학자들에 대한 믿음이 붕괴됐다”며 “하지만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로드맵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제학이 위기에 봉착했다는 또 다른 근거는 자유무역에 대한 일반인들의 지지가 줄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여론조사기관인 퓨(Pew) 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2014년에는 민주당 유권자의 60%가, 공화당 유권자의 55%가 자유무역협정을 지지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조사에서는 이 비율이 민주당에서 56%로 떨어졌고, 공화당에서는 24%로 추락했다.
미국이 세계경제에 관여한 것이 미국에 좋았는지를 묻는 설문에서 학자들의 86%가 좋다고 답했고, 반대로 답한 비율은 2%에 불과했다. 반면 일반인중 좋았다는 비율은 44%, 미국에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는 비율은 49%로 절반에 육박했다. 경제학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결과다.
이번 미국경제학회에서 그러나 노벨상을 수상한 석학을 비롯, 대다수 경제학들은 트럼프 당선자의 실패를 확신하는 ‘저주’를 퍼부었다. 에드먼드 펠프스는 컬럼비아대 교수는 “트럼프 당선자의 기업때리기는 1930년데 히틀러를 연상시킨다”며 “성장의 기반이 되는 혁신을 저해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트럼프 당선자의 공약인 재정확대와 감세는 감당할 수 없는 국가부채 증가로 귀결될 것”이라며 “(공약이 실현되지 않도록) 경제학자들이 깨어나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수많은 학자들도 트럼프 당선자의 보호무역주의가 중산층의 삶의 질을 악화시키고, 미국을 고립시킬 뿐이라고 비판했다.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세계화라는 ‘깨진 약속’이 대중의 분노를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세계화와 자유화의 진전, 낮은 세금, 기술의 발전이 모든 사람을 잘 살게 할 것이라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어 “그러한 과도한 약속은 경제학이 아닌 경제학자들이 저질렀다”며 반성을 촉구했다.
그러나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사진)는 “세계화가 신자유주의의 음모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수십억의 사람들이 가난에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왔다”며 “국가내 불평등은 심해졌지만 전 세계적인 불평등은 줄었다”고 강조했다.
과연 트럼프노믹스는 성공할 수 있을까. 만약 실패로 귀결되더라도 ‘경제학의 승리’로 이어질 수 있을까. 데이비스 교수는 “사실(facts)와 분석(analysis)만이 경제학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켜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끝) / /sglee@hankyung.com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