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선희 기자 ]
내년 증권가는 큰 변화의 파고를 맞이한다. 초대형 투자은행(IB)이 잇따라 탄생하면서 증권업계의 지각변동이 예고되서다. 통합 미래에셋대우(자기자본 6.7조)가 업계 선두로 올라서고 NH투자증권(4.6조) 삼성증권(4.1조) 한국투자증권(4조) 통합 KB증권(3.9조)이 뒤를 따르면서, 초대형 IB 경쟁은 본격화될 예정이다.
◇금융위, 자기자본 4조 이상 증권사에 단기금융 허용
금융위원회는 지난 29일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방안 등을 담은 자본시장법 시행령 및 금융투자업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증권사는 만기 1년 이내 어음 발행 등 단기금융업무를 할 수 있게 된다. 자기자본 8조원 이상인 증권사는 종합투자계좌(IMA) 업무가 허용된다. 종합투자계좌는 고객 예탁금을 통합해 기업금융 자산 등에 운용하고 수익을 고객에게 배당하는 것이 목적이다.
금융위는 이와 함께 모든 초대형 IB에 비상장 주식에 대한 내부주문 집행을 허용하기로 했다. 증권사 내부에 거래소와 유사한 매매시스템을 구축해 다수로부터 받은 주문을 처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개정안은 내년 2월8일까지 입법예고와 규정변경예고를 한 뒤 규제개혁위, 법제처 심사를 거쳐 빠르면 내년 2분기에 시행될 예정이다.
그간 국내 증권사들은 글로벌 IB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엔 자본 규모가 턱없이 모자라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아시아 주요 IB인 일본 노무라, 중국 중신증권의 경우 자기자본이 각각 28조1000억원, 25조6000억원에 달한다. 말레이시아 CIMB만 해도 자기자본이 11조7000억원 규모다.
◇자본확충 '러시'…빅5 증권사 초대형 IB 자격 확보
지난 8월 초대형 IB 육성안이 발표된 후, 국내 증권사들은 초대형 IB의 최소 기준인 4조원을 맞추기 위해 최근까지 몸집을 불렸다. 지난달에는 삼성증권이 유상증자로 자기자본을 확충하면서 빅5 증권사 모두 초대형 IB 행렬에 동참하게 됐다.
삼성증권은 3544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 자기자본이 4조1500억원으로 불어나게 된다. 앞서 삼성증권은 자사주 835만9040주를 삼성생명에 매각해 확보한 자금으로 자기자본을 3조8000억원으로 늘린 바 있다.
다른 대형 증권사들도 금융당국이 제시한 요건인 자기자본 4조원 허들을 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한국투자증권 역시 외형 확장에 적극 나서며 초대형 IB의 조건을 갖췄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달 1조7000억원 규모의 증자를 단행하면서 자기자본을 4조200억원으로 확대했다.
내년 1월 1일 출범하는 통합 KB증권(KB투자증권+현대증권)의 경우 자기자본 규모를 단순 합산하면 약 3조9800억원이다. 이 증권사는 추가 증자를 통해 자기자본 4조원을 맞출 예정이다. 아울러 금융위가 초대형 IB 육성을 위한 법령개정 절차를 개시한 만큼 관련 태스크포스팀(TF)을 발족한다는 계획이다.
통합 미래에셋대우(자기자본 6조7000억원)에 업계 선두 자리를 내어주는 NH투자증권(4조6000억원)도 이미 초대형 IB의 요건을 충족한 상태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초대형 IB 간 경쟁이 시작됐다"며 "발행어음을 통한 자금조달 등으로 기업금융을 적극 확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증권사 무리한 자본확충 우려 vs 신규시장 진출 필요성
초대형 IB행렬에 동참하진 않지만 신한금융투자와 메리츠종금증권도 자기자본을 확충했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자기자본 3조원) 지위를 얻은 후 중장기적으로 초대형 IB로 도약하겠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메리츠종금증권은 메리츠캐피탈 인수를 통해 자본을 확충, 자기자본을 2조2000억원으로 늘렸다. 앞서 7월에는 신한금융투자가 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하며 자기자본을 3조원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증권사들이 잇따라 자본확충안을 발표하면서 업계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자본이 늘어난 만큼 이익이 확대되지 않으면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올 하반기 업황 부진에 이어 내년에도 시장 전망이 밝지 않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인상, 신흥국 자본이탈·경기 둔화, 주요국의 정치 리스크 문제 등이 금융시장에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되서다.
초대형 IB들이 당장의 ROE 하락에 신경쓰기 보다는 수익성 제고를 위해 신사업 발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김지영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10년간 증권업 수익구조는 위탁매매에서 기업금융, 자산관리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며 "수수료수익에서 IB 관련 수수료 수익도 큰 폭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금융·자산관리(WM) 융합을 통한 수익원 창출도 가능해진 만큼 증권사들은 선제 대응해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채선희 한경닷컴 기자 csun00@hankyung.com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