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본부 기자회견서 사실상 대선 출마 선언
"국민들 善政 결핍에 좌절 느껴…귀국해 각계 말씀 들어보겠다"
"비박·친박 이런 게 무슨 소용…" 기존 정치권 강하게 질타
"정치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다른 정치세력과 연대도 시사
[ 뉴욕=이심기 기자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 출마 의지를 드러냈다. 잠재적 유력 대권후보로만 거론됐지만 속내를 정확히 밝히지 않았던 반 총장이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제 한 몸 불살라서라도…”라며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반 총장은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특파원단과의 마지막 기자회견을 정견 발표의 계기로 삼았다. “내년 1월 중순께 귀국해 국민의 의사를 들어본 뒤 (대선 출마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사실상 대선 도전장을 던졌다. 이달 말 10년의 유엔 수장 임기를 마치고 다음달 중순 귀국하면 반 총장을 둘러싼 정치권의 합종연횡과 함께 대선 레이스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국민의 뜻이 중요… 한 몸 불사를 것
이날 반 총장은 자신의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확답을 하지 않았다. 아직 사무총장 임기가 열흘 남짓 남아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대권이라는 단어만 언급하지 않았을 뿐 기자회견 발언 곳곳에서 정치 참여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반 총장은 “사무총장을 하면서 보고, 배우고 느낀 것이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한 몸 불살라서 노력할 용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미력한 힘이지만 어떤 계기가 되든지 국가의 발전을, 국민의 복리증진을 위해 도움이 된다면 몸을 사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 73세로 나이가 많으니 쉬는 게 어떠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건강이 받쳐주는 한 국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은 국민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는 귀국한 뒤 여론을 수렴해 결정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친박-비박’이 무슨 소용인가
반 총장은 “정치는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수단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느 당, 어떤 정치인과 연대할지를 포함한 구체적인 전략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 깊이 생각을 안 해 봤다”며 “앞으로 깊이 고뇌하겠다”는 말로 ‘선택지’를 남겨뒀다.
다만 “정치 지도자들이 정파와 계층, 지역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국민이 없는 상황에서 정당이 무슨 소용인가, 친박(친박근혜)·비박(비박근혜)이 무슨 소용인가”라며 여권을 질타했다. 그러면서 “모든 이해 당사자와 포용적으로 대화해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며 “화합과 통합, 소통에서 진정한 지도력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자신과의 정치적 연대를 위한 몇 가지 힌트를 남긴 것으로, 영입설에 불을 지폈던 새누리당 친박계와 거리를 둔 발언이다.
◆촛불은 국민의 좌절과 분노의 표시
반 총장은 귀국을 앞둔 소회를 묻는 질문에 “참담하다”는 말로 청와대와 정치권을 향해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그는 “자랑스럽게 돌아가서 국제사회에서 환영받고 찬사도 받았다고 말하고 싶은데 가슴이 무겁다”고 말했다.
그는 “촛불로 나타난 민심은 국민의 좌절과 분노를 나타내는 것”이라며 “선정(善政)의 결핍과 그동안 쌓인 적폐가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반 총장은 “수백만 국민이 그들의 희망과 염원을 나타냈다고 본다”며 “정치 지도자들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분석해서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기여할 것인지 깊이 고뇌하면서 생각하고 있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반 총장은 또 “촛불시위 과정에서 국민이 보여준 성숙한 시민의식을 국제사회가 높이 평가하고 있다”며 “민주적 헌정 질서에 따라 문제를 극복해서 우뚝 서는 계기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 총장은 향후 일정과 관련, “내년 1월 중순 귀국하겠지만 날짜를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탄핵소추 상황을 언급하면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예방하고 3부요인을 찾아가 귀국신고를 하겠다”고 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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