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팔아 막말하는 제왕적 국회
"어떤 국민이 그런 완장 채웠나"
개헌하면 '국회갑질'부터 고쳐야
이학영 기획조정실장 haky@hankyung.com
며칠 전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 간에 고성(高聲)이 오갔다. 한 의원 입에서 “당신…”이라는 말이 튀어나오자, 몇 살 더 많은 상대방이 발끈했다. “얻다 대고 당신이야!” 하대(下待)하는 호칭이 꽤 불쾌했던 모양이다.
‘최순실 게이트’ 국회 청문회가 처음 열린 보름 전으로 시곗바늘을 돌려보자. 한 의원이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더 많은 증인을 “당신은…”이라고 부르며 이죽거렸다. 몇 달 전에 50세를 넘긴 그는 두 살 적은 기업인을 향해선 “아직 50(세)이 안됐는데…”라며 ‘나이 시위’를 했다.
남부끄럽고 유치한 얘기를 꺼내들자니 민망하다. 그렇지만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후안무치(厚顔無恥)하고 막돼먹기가 도(度)를 넘어선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묵과할 수 없어서다. 어떤 의원은 국회 선배이기도 한 70대 후반의 청문회 증인에게 “당신은 죽어서 천당 가기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극언(極言)까지 퍼부어댔다.
‘국해(國害)의원’으로까지 불리는 자들의 방약무도함이 오죽했으면 “촛불민심이 지향해야 할 곳은 제왕적 국회다. 일제(日帝) 고등계 형사를 했으면 좋았을 사람처럼 증인들을 몰아세우고, 연장자(年長者)에게 패륜적 언행을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소셜미디어서비스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국회의원들의 오만방자함에 짜증이 난다. 할 수만 있다면 달려가서 뺨이라도 한 대 갈겨주고 싶다. 제깟 것들이 뭔데 유권자들을 불러놓고 호통치고, 빈정대고, 닦달을 하는가. 걸핏하면 ‘국민들’ 운운하는데 어느 국민들이 그런 권능을 부여했다는 것인지.”
글쓴이의 울분은 청문회 참석자들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진다. “증인으로 나온 사람들도 답답하다. 하나같이 주눅 들어 ‘예, 예’ 하고만 있으니 보기가 딱하기도 하지만 화도 난다.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 고압적이지 않으냐!’며 일침을 놓을 수도 있으련만.”
미국 대통령 선거전 초반, 민주당 경선 후보였던 버니 샌더스와 미국 간판기업 GE(제너럴일렉트릭)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이 벌인 논전(論戰)이 떠오른다. 샌더스가 GE에 대해 “공장을 멕시코로 옮겨 고용 환경을 악화시키고, 세금도 내지 않는 탐욕스러운 기업”이라고 비난하자, 이멜트는 언론 인터뷰를 통한 정면대응으로 묵사발을 냈다. “샌더스 의원은 GE가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비판했지만, 우리는 한 해 수십억달러의 세금을 내고 있다. 거짓말을 반복한다고 해서 진실이 되지는 않는다. GE는 124년 동안 사회주의자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선거를 위해 공허한 약속을 하거나 싸구려 공격을 하는 것은 쉽지만, 미국 내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경영활동을 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
분명히 해둬야 할 게 있다. “한국은 미국이 아니다”는 것이다. 이멜트 회장이 정치적 보복을 받았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한국은 다르다. 몇 달 전 한 기관장이 의원들의 무례한 질문태도를 비판하는 ‘괘씸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그 기관의 새해 예산을 뭉텅이로 삭감당하는 날벼락을 맞았다.
그런 한국의 국회의원들이 엊그제 대(對)정부질문에서 ‘무책임(無責任)의 정수(精髓)’를 보여줬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국무총리를 위급상황 발생 시 국정 공백 우려를 감수하면서까지 다섯 시간 동안 본회의장에 불러냈지만, 정작 회의장을 지킨 국회의원은 30여명으로 전체의 10분의 1에 불과했다. 질문 내용도 제대로 된 국정 논의보다는, 개인에 초점을 맞춘 ‘군기잡기’가 대부분이었다.
“권한대행이 황제급 의전을 요구한다”거나 “이미 대통령으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등의 자극적 질문을 넘어, “나라를 팔아먹고도 잘못이 없다고 한 이완용 같다” “기름장어가 ‘길라임’(박근혜 대통령을 비유) 역할을 하려 한다” 따위의 막말까지 쏟아냈다.
이런 국회를 언제까지 그냥 두고봐야 하는지 속이 터진다. 대통령은 언제든 탄핵소추를 통해 파면할 수 있지만, 국회의원은 한 번 당선되면 임기 내내 특권 철밥통이다. 개헌을 하면 이 대목부터 뜯어고쳐야 할 것 같다.
이학영 기획조정실장 ha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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