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현대자동차 LG SK 등 9개 그룹 총수가 오늘 최순실 게이트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증언대에 선다. 이번 국정조사 청문회는 국민적 의혹과 국정 마비를 초래한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자는 게 주목적이다. 기업들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것이 정권의 겁박이나 회유 탓인지, 혹은 반대급부를 기대한 것인지도 더 이상 의혹을 남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국 대표 기업 총수들이 무더기로 청문회에 불려나와 추궁당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기업인들도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협조할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우려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과거 청문회나 국정감사를 상기할 때 이번 국정조사도 ‘최순실 국조’가 아닌 ‘기업인 국조’로 변질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이다. TV 앞에 서면 윽박지르고 호통치고 망신주는 게 본분인 줄 아는 의원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기업인 대다수가 이미 검찰조사를 받았고 공소장에도 ‘피해자’로 적시돼 있다. 이번 청문회도 “네가 네 죄를 알렸다”식의 원님재판으로 흐른다면 의원들은 자신의 수준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진상 규명을 오히려 방해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청문회라 해도 가릴 게 있고 피할 게 있다. 제기된 의혹과 무관한 기업의 경영전략이나 기밀자료까지 무작정 까발리는 것은 해당 기업은 물론 국익에도 전혀 득이 될 게 없다. 그렇지 않아도 투자나 인사까지 올스톱이다. 해외 경쟁 기업들만 웃게 될 것이다. 오죽하면 외신들조차 ‘경제심리 악화’(파이낸셜타임스), ‘한국 기업의 브랜드 신뢰도 손상’(월스트리트저널)을 걱정할 정도다. 청문회 수준도 국격(國格)이다.
청문회는 문자 그대로 묻고 듣는 자리다. 이번 만큼은 의원들의 고성(高聲)이 아니라 기업인들의 얘기를 차분하게 듣고 진실 규명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진실이지 이참에 한번 뜨고 싶은 정치인의 쇼맨십이 아니다. 차제에 정권이 기업을 겁박해 강제 모금하는 악습을 확실히 끊어야 한다. 기업들도 돈은 돈대로 뜯기고 욕은 욕대로 먹지 않도록 자중자애해야 할 것이다. 이런 청문회는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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