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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덕후의 시대①] '트렌드 세터'가 된 덕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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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7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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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타쿠→오덕후→덕후·덕질
    용어 파생되면서 의미도 일부 변화
    비상업성, 리얼함, 눈높이 강점 '장외전문가'




    [성공한 덕후의 시대]
    ① '트렌드 세터'가 된 덕후들
    ② 운동화 사이즈를 네이버에 묻는 이유
    ③ 화장, 뷰티 유튜버에게 배웠어요
    ④ 패키지보단 자유여행…여행시장 주무르는 덕후들
    ⑤ 유명해진 덕후의 선택, '파워블로거'와 '블로거지'

    [ 김봉구 기자 ] 리우올림픽 폐막식의 압권은 ‘아베 마리오’였다. 다음 올림픽 개최국인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슈퍼마리오 분장을 하고 나타났다. 슈퍼마리오 세대는 환호했다. “콘텐츠 강국의 면모를 봤다”고 했다. ‘덕후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콘텐츠 파워의 뿌리는 캐릭터에 대한 열광이다. ‘뽀통령’ 뽀로로가 그렇다. 특정 연령층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다. 다만 이 시기를 지나면 시들해진다. 덕후는 다르다. 무언가에 꽂히면 나이와 상관없이 충성도와 구매력을 일관되게 유지한다. 덕후를 바라보는 시선도 변했다. ‘덕밍아웃’(덕후+커밍아웃)이 잇따른다. 최근 취업포털 인크루트 설문에서 응답자의 84%가 “나는 덕후 기질이 있다”고 답했다.

    물건 살 때, 여행 갈 때, 맛집 찾을 때, 심지어 화장할 때까지, 이미 덕후들은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 사회적 인식 변화와 능동적 소비주체로의 부상이 맞물렸다. 한경닷컴이 취재를 통해 들여다본 이들에게 부여한 맞춤 역할은 새로운 ‘트렌드 세터’다.

    ◆ 음지에서 양지로

    오타쿠는 ‘관심 있는 특정 분야와 사물에 관해서는 이상할 정도로 자세히 알고 있지만 사회적 상식은 결여된 사람’으로 정의된다. 일본어 오타쿠를 한국식 발음으로 바꾼 말이 오덕후다. 정감 있고 친숙한 사람 이름 같다. 요즘은 여기서 성을 뗀 약칭인 덕후가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임찬수 중앙대 교수는〈한국 오타쿠에 관한 용어와 의미 고찰(2013)에서 전문성과 반(反)사회성의 두 가지 속성이 섞여있는 오타쿠 개념에서 전문성 쪽에 보다 초점을 맞췄다. 임 교수는 “폐쇄성보다는 아마추어 전문가 쪽에 힘이 실린다”고 설명했다.

    중요한 실마리다. ‘집에 틀어박힌’이란 단서가 붙긴 하지만 ‘전문가’로 정의됐다. 오타쿠에서 덕후로 용어가 바뀌면서 반사회성 이미지는 희석되고 무게중심이 전문성 쪽으로 옮겨왔다. 집에 틀어박힌다는 점 역시, 온라인과 모바일의 발달로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이제 ‘덕질’하는 건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致캡?가리키는 표현이 ‘화성인’(tvN ‘화성인 바이러스’)에서 ‘능력자’(MBC ‘능력자들’)로 바뀐 것이 좋은 예다. 건덕(건담 프라모델 덕후)인 회사원 유모씨(34)는 “요새는 덕후 같다는 말을 편하게 하고, 듣는 쪽도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 덕후가 각광받는 이유

    이같은 현상에 대해 지난해 발표된 논문 〈덕후의 창작문화와 미래 소비자〉(남정숙, 지속가능과학회)는 한국적 덕후가 “엽기와 댓글로 풍자와 해학이 가미된 친근한 이미지”로 “일본의 오타쿠와 비교해 개방적이고 온라인상에서 사회적 교류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덕후는 아마추어다. 지식의 깊이는 전문가 못지않으나 대개 자신의 본업이 아니다. 열정적으로 몰입하되 그 보상은 대체로 자기만족에 그친다.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이 점에 열광한다. 어떤 의도가 없어서다. 순수하고 ‘리얼’한 덕질의 객관성이 호평을 받는다.

    주부 김모씨(32)는 “물건 살 때 상품평을 참고한다. 홍보 기사, 블로그 광고글, 업체 후원을 받은 리뷰는 패스하고 실제 후기 위주로 본다”고 말했다. 남는 것은 주로 파워블로거 형태의 덕후인데, 이들이 느끼는 자기만족의 성격은 독특하다.

    2012년 논문 〈오타쿠에 관한 시대별 특징연구〉(조홍미·안병곤, 일본문화연구)를 보면 덕후들은 “같은 취미를 공유한다는 동질의식과 자신의 지식을 어떤 식으로든 과시하고 싶어” 한다. 별다른 보상 없이 자발적으로 답변을 다는 네이버 지식인(iN) 서비스가 딱 들어맞는 사례다. 이 공간의 덕후는 소비자인 동시에 참여자가 된다.

    제도권 전문가에 비해 눈높이가 비슷한 점도 장점이다. 세분화되거나 단계적인 수요를 커버한다. 대학에서 기타동아리 활동을 한 직장인 김모 씨(31)는 “유튜브에 올라온 기타연주 영상을 보고 따라 치곤 했다. 전문 연주자가 아니어서 오히려 참고가 됐다”고 귀띔했다. 덕후들이 참여하는 각종 동영상 서비스가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 성공한 덕후 혹은 트렌드 세터

    대량생산·대량소비의 기존 사회에서 탈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 △비상업적이고 순수한 리얼함 △개개인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다양성 △소비자에서 참여자로 변화하는 프로슈머(생산자+소비자)적 요소의 결합이 ‘덕후의 시대’를 불러낸 셈이다.


    배우 심형탁은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 도라에몽 덕후다. 프로야구단 롯데 자이언츠는 그가 시구자로 나선 경기에서 도라에몽 유니폼을 완판했다. IT(정보기술) 덕후로 입소문 난 걸그룹 레인보우 멤버 김지숙을 필진으로 발탁한 LG전자 블로그는 방문객 수가 60%나 늘었다. 덕질로 소비를 이끄는 ‘성공한 덕후’들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덕후를 “정보의 발산력·파급력이 높은 트렌드 세터”, “미래 신산업 견인차 역할을 하는 중요 소비자이자 생산자”로 규정했다.

    오수연 칼럼니스트는 “최근 한국의 덕후들은 새로운 소비집단이자 혁신 아이디어 제공자로 각광받고 있다”면서 아예 “덕후 취향을 잡아라”라고 조언했다.

    콘텐츠 자체보다 ‘덕후 경험’에 주목한 마케팅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최근 맥도날드는 어린이메뉴 해피밀 세트를 구입하면 슈퍼마리오 장난감을 줬다. 정작 열광한 건 어른들, 아베 마리오를 반겼던 바로 그들이었다. 우리는 능력자로 거듭난 덕후들이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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