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우선주의 기치 내건 트럼프 당선은 미국의 정치혁명
미국 새 정부에 대응할 외교정책 발등의 불로 떨어졌는데 한국은 무정부 상황
트럼프를 제대로 아는 한국인은 프로골퍼 최경주뿐이라는 말까지
이학영 기획조정실장 haky@hankyung.com
“내가 뉴욕 맨해튼 5번가 한복판에 서서 아무나 쏴도, 유권자들은 내게서 등을 돌리지 않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선거 과정에서 이런 말을 했을 때 귀담아 들은 사람은 별로 없었다. 대다수가 “말도 안 되는 허풍”으로 받아넘겼다. 하지만 그의 장담은 사실이었다.
트럼프가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건, 성차별 발언을 하건, 말도 안 되는 엉터리 통계를 들이대며 자유무역을 공격하건, 지지자들은 그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표를 몰아줬다.
‘대이변’으로 불리는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놓고 가장 먼저 당황한 건 미국 주류 언론들이었다. 뉴욕타임스는 개표 직후부터 트럼프가 앞서가기 시작하자 ‘stunning upset(깜짝 놀랄 예상 밖의 승리)’이라는 말로 당혹감을 표현했다. upset이라는 단어에는 ‘예기치 않게 혼란스러운 상황, 곤경’이라는 뜻도 있다. ‘Hillary Clinton for President(클린턴을 대통령으로)’라는 사설을 쓸 정도로 대놓고 힐러리를 지지했으니 곤혹스러워할 만도 했다.
트럼프가 ‘주류’들의 이런 예측을 깨부순 요인이 뭘까. 애런 제임스 UC어바인 교수가 쓴 《또라이 트럼프(ASSHOLES: A THEORY OF DONALD TRUMP)》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의 어떤 실수도 쉽게 용서한다. 그만이 처치 곤란한 철면피들로 꽉 찬 정치판의 질서를 바로잡을 힘이기 때문이다. 그가 익살꾼을 벗어나 대중선동가로 변신했고, 허풍쟁이이며,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지지자들이 멍청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부패한 정치판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정치문외한(outsider)이 필요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를 선택했다.” 그의 진단대로, 미국 유권자들은 힐러리 클린턴으로 대변되는 ‘부패하고 닳아빠진 기성 정치세력’을 응징하기 위해 ‘정치초보 막말꾼’을 선택하는 ‘도박’을 했다.
미국인들에게는 정치혁명이지만, 한국은 국가 생존전략을 다시 짜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됐다. 두 달 뒤면 ‘이민 통제’ ‘해외 군비 감축’ ‘일자리를 위한 보호무역 실시’ 등을 공약으로 내건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다. 미군 주둔비용을 한국이 부담해야 하고,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하겠다는 그의 정책노선에 어떤 대응책을 내놓을 것인지가 당장의 과제로 떠올랐다. 앞날이 녹록지 않을 것임은 트럼프 당선이 유력해지자 주가와 원화값이 곤두박질친 데서도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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