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못지않은 동생, 손태장 일본 미슬토우 회장
2001년 IT거품 꺼지며 '쓴맛'…직접 개발한 모바일 게임 '대박'
"앞으로 인터넷 혁명 일어날 것"
형 손정의가 무심코 흘린 말 한마디가 그의 삶 바꿔놔
야후재팬 설립 과정 참여
촉망받던 젊은 사업가였지만…
IT 거품 꺼지며 수억엔 빚더미
한국 게임회사 제휴로 반전 성공, 마쓰다차보다 기업가치 커져
동아시아 실리콘밸리 조성 꿈
일본 경제의 미래 대비위해 가능성 있는 스타트업 발굴·육성
창업 경험 젊은세대에게 전수
“2030년까지 동아시아에 벤처 생태계 만들겠다”
[ 강동균 기자 ] 손태장(孫泰藏·일본명 손 타이조·44). 재일동포 3세로 현재 일본 최고의 부호이자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기업가인 손정의(孫正義) 소프트뱅크 사장(59)의 막냇동생이다. 상당수 일본 기업가들이 가업을 물려받은 ‘상속형’ 부자인 데 비해 손정의 사장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신의 힘으로 부를 일군 ‘자수성가형’ 부자인 까닭에 일본 젊은이들이 가장 존경 求?기업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손 사장의 활약상은 이미 국내외에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손태장이란 이름은 국내에선 조금 생소한 게 사실이다.
어려서부터 싹튼 기업가정신
일본에서 손태장은 형인 손정의 사장 못지않게 성공한 기업가로 평가된다. 도쿄대에 재학 중이던 23세에 손정의가 구상 중이던 ‘야후 재팬’ 설립에 참여해 일찌감치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정보기술(IT) 관련 개발업체인 인디고를 세워 사장이 됐다. 인디고를 게임업체인 겅호온라인엔터테인먼트로 탈바꿈시킨 뒤에는 증시에 상장했다. 지금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투자 및 육성 전문기업인 미슬토우(Mistletoe) 회장을 맡고 있다.
손태장 회장은 1972년 9월29일 일본 사가현의 토스시에서 4형제의 막내로 태어났다. 빠찡꼬를 운영하던 아버지는 자식들이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교육을 했다. 특히 막내아들로 귀여움을 독차지한 손태장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빠찡꼬 신규 점포 부지를 물색하는 데 데리고 다녔다. 차를 타고 돌아다니다 괜찮다 싶은 땅을 발견하면 차를 세우고 어김없이 어린 손태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태장아, 이 땅 어떤 거 같으냐?”
손태장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 “역시 천재구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 근처 상업단지의 사업자 수와 도시계획 등을 알려주며 그곳에 점포를 내면 성공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해줬다. 손태장은 이렇게 어릴 때부터 사물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습관을 키웠고 그 속에서 벤처정신도 자연스럽게 싹텄다.
중학생이던 시절, 손정의가 설이나 추석 때 본가에 내려오면 아버지와 형제는 서너 시간 넘게 얘기를 나눴다. 주제는 소수의 사람과 말밖에 갖지 못했던 몽골제국이 광대한 토지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 오다 노부나가가 천하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던 비결 등이었다. 당시 손정의는 이미 소프트뱅크의 사장이었다.
도쿄대 입시에 두 번이나 떨어지기도
학창시절 공부를 곧잘 했지만 손태장은 대학입시 첫해에 도쿄대에 지원해 낙방했다. 다음 해에도 도쿄대를 비롯해 예비로 원서를 넣었던 대학에까지 모두 떨어졌다. 당시 손정의 사장은 동생을 2시간 넘게 꾸짖었다. “너는 근본적으로 생각이 글러 먹었다. 지금처럼 살면 무슨 일이든 제대로 할 수 없다. 늘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인간이 된다.”
이를 계기로 손태장의 인생은 변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18시간씩 공부에 매진했다. 상자 여섯 개 분량의 참고서를 두 번씩 독파했다. 그 이후 모의고사 성적이 전국 2등으로 올랐고 그토록 원하던 도쿄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대학생활은 생각처럼 재미있지 않았다. 졸업반이 돼 친구들이 취업을 준비할 때도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라 방황했다. 회사에 취직하기 싫었지만 아버지나 형처럼 사업을 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야후 재팬 설립을 준비하던 손정의 사장이 “앞으로는 인터넷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무심코 흘린 한마디가 그의 삶을 바꿔놨다. 손태장은 야후 재팬의 개발부문을 맡았다. 2개월 동안 회사 골방에 텐트를 치고 거의 먹지도 않고 잠도 자지 않으며 일에만 매달렸다. 그 이후에는 다다미방에서 친구 몇 명과 인디고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스물셋이었다.
촉망받던 젊은 사업가였지만 2001년 IT 거품이 꺼지면서 위기를 맞았다. 회사 수익이 줄면서 80명이던 직원은 4명으로 줄었다. 수억엔의 빚도 졌다. 하지만 이듬해 한국의 게임회사와 제휴를 맺고 온라인 게임회사 ‘겅호’를 설립하면서 반전에 성공했다. 꾸준히 히트작을 내면서 점유율을 늘려갔고 2005년 3월9일 일본의 기술주 시장인 자스닥(JASDAQ)에 회사를 상장시켰다.
겅호는 모바일 시대로 접어들면서 더욱 성장했다. 손태장 자신이 직접 개발에 참여한 모바일 게임 ‘퍼즐 앤 드래곤’이 세계에서 가장 이익을 많이 내는 게임으로 자리잡으면서 기업 가치가 급등했다. 2013년에는 일본 자동차기업 마쓰다보다 회사 가치가 더 커졌다. 덕분에 손태장도 공식적으로 자산 10억달러 이상을 보유한 억만장자 대열에 올랐다.
성공가도 달리던 시기에 새로운 도전에 나서
회사 가치가 정점을 찍고 있던 시기 손태장은 중대 결단을 내렸다. ‘대기업을 만드는 것은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그는 새로운 뜻을 세웠다. 기업가로서의 경험을 젊은 세대들에 전수하고 2030년까지 동아시아에도 실리콘밸리 같은 벤처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2013년 겅호의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사비를 들여 벤처 투자회사인 미슬토우를 설립했다. 일본 경제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가능성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해 지원하고, 이들이 성장해 자본을 확충하는 등의 모든 과정에서 조력자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미슬토우는 단순한 투자회사가 아니다. 인수하거나 지분을 투자한 스타트업이 네트워크로 얽혀 함께 성장하는 구조다. 도쿄 아오야마에 있는 1300평 규모의 스튜디오를 함께 사용하고 서비스 솔루션과 노하우를 공유한다. 미슬토우의 기술, 마케팅, 디자인 분야 전문가들이 이들 스타트업을 지원한다.
투자 대상도 다른 스타트업 투자회사와 다르다. 투자 대상 기업을 선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이 기업이 앞으로 사회에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다. 미슬토우는 지금까지 30여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드론을 이용해 아프리카 극빈국의 의료시설과 마을에 직접 혈액이나 약품, 각종 의료 기자재를 운반해주는 집라인(Zipline), 인공위성 잔해를 비롯해 우주공간에 쌓이고 있는 각종 쓰레기를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아스트로스케일(Astroscale)이 대표적이다. 투자 과정에서 손태장은 사비 100억엔가량을 썼다. 손태장 회장은 재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경쟁력 있는 경제구조를 유지하려면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서로 공생하고 협력해야 한다”며 “그 부분에서 미슬토우가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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