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송
[ 청송=강경민 기자 ]
경북 청송군은 산간벽지다. 전국 곳곳을 거미줄처럼 잇는 철도와 고속도로도 청송은 지나지 않는다. 청송군 전체 면적의 80%를 차지하는 산이 도시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서다. 안동과 영덕 등 인근 지역에서 청송을 가기 위해선 반드시 고갯길을 하나 이상 넘어야 한다. 청송을 ‘육지 속의 섬’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청송은 교통오지여서 빼어난 자연환경을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었다. 푸른 소나무(靑松)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청송은 주왕산, 주산지 등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본격적인 단풍철을 앞두고 더욱 매력을 발산하는 청송으로 떠나보자.
천하제일 비경 주왕산
해발 720m로 높지 않고 규모도 작은 주왕산이 국립공원이 된 것은 다른 산에서는 보기 힘든 기이한 형태의 암석과 빼어난 풍경 덕분이다. 주왕산 내 고찰인 대전사(大典寺)에서 바라보면 ‘기암단애(奇岩斷崖)’라 불리는 거대한 바위 7개가 산을 감싸쥐듯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주왕산이 석병산(石屛山)으로도 불리는 이유다. 수천만년 전 화산지대였던 이곳을 물과 바람이 깎아내며 만들어낸 작품이다.주왕산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기암은 주왕산의 위용을 한눈에 느끼게 한다. 특히 경사 90도의 가파른 절벽인 학소대와 마주한 병풍바위는 한 폭의 그림 같다. ‘한국 자연의 100경’에 선정될 만큼 경관이 빼어나다.
주왕산이라는 지명은 중국 당나라 때 반역을 일으켰다가 이곳에 숨은 주도(周鍍)라는 인물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스스로 주왕(周王)이라고 칭한 주도는 신라로 도망쳤지만 신라군과 격전을 벌이다 화살에 맞아 죽었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주왕산엔 주왕의 전설이 스며든 곳이 많다. 주왕과 신라군이 격전을 벌인 기암, 주왕의 아들과 딸이 달구경을 했다는 망월대, 주왕이 숨었다가 숨진 주왕굴 등이 대표적이다.
몽환적 풍경 연출하는 주산지
주왕산 남서쪽 끝자락에 있는 주산지는 평균 수심 7.8m의 조그만 산중 저수지다. 조선 경종 1년인 1720년 마을 주민들이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주산계곡에 제방을 쌓아 만들었다. 이 아름다운 호수는 오랜 역사 동안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바닥을 한 번도 드러낸 적이 없는 농민들이 믿고 의지하던 저수지였다. 둘레 1㎞, 길이 100m에 불과한 작은 호수 가장자리엔 왕버드나무 30여그루가 물에 잠긴 채 자란다.
물안개가 깔리는 새벽엔 물과 나무가 어우러져 몽환적인 풍경이 연출된다. 저수지 위쪽에는 원시림이 자란다. 인근엔 천연기념물인 수달과 원앙, 솔부엉이, 소쩍새 등을 비롯해 고라니, 너구리, 노루 등도 살고 있다. 주산지는 2003년 개봉한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가 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사진작가들이 대한민국에서 새벽 안개가 낀 풍광이 아름다운 3대 저수지 중 첫째로 뽑기도 했다.
원시적 비경 간직한 절골계곡
청송 주민들은 절골계곡을 주왕산에 버금가는 곳으로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절골계곡은 주왕산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계곡이다. 길이가 10㎞에 이르는 이 계곡은 원시적인 비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주왕산의 주 등산로가 있는 대전사나 폭포가 있는 쪽보다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아 한적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깨끗한 물이 사시사철 흐르고 있을 뿐 아니라 죽순처럼 우뚝 솟은 기암괴석과 울창한 수림으로 둘러싸여 있어 별천지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백석탄의 절경 볼 수 있는 신성계곡
신성계곡은 주왕산을 제치고 청송 8경 가운데 ‘청송 1경’을 차지할 정도로 으뜸가는 계곡이다. 안덕면 신성리 방호정~고와리 백석탄 15㎞ 구간에 걸쳐 있다. 암벽 위에 우뚝 선 아름다운 정자인 방호정과 맑은 물,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방호정은 조선 광해군 때 문신인 조준도가 어머니를 사모해 지은 정자다. 이곳에서 맑은 길안천을 내려다보는 멋도 그윽하다.
신성계곡의 절정은 백석탄이다. 백옥같이 반짝이는 고운 돌들이 많은 개울이라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99칸 기와집 볼 수 있는 송소고택
청송읍과 파천면, 진보면이 자리 잡고 있는 청송 북부권은 문화유적이 많다. 안동 길안면 쪽에서 재를 넘으면 가장 먼저 나오는 곳이 파천면이다. 이곳에는 99칸 기와집인 송소고택이 있다. 조선 영조 때 만석의 부를 누린 청송 심씨 심처대의 7대손인 송소 심호택이 1880년께 지었다. 그의 호를 따 송소고택으로 부른다. 조선 후기 상류층 주택의 전형을 보여준다. 송소고택에서는 해마다 봄, 가을이면 정원에서 음악회가 열린다. 고택 체험도 가능하다.
청송이 낳은 김주영 작가
청송이 낳은 한국문학의 거목 김주영 작가의 대하소설 《객주》를 주제로 한 객주문학관은 폐교를 리모델링해 저술, 전시, 교육, 체험 공간으로 구성했다. 진보면 진안리 옛 진보제일고에 세워진 이곳은 전국 문학관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김 작가의 작품 속 내용과 연관되는 인물과 장소, 상황 등을 전시·체험시설로 조성했다.
김 작가는 작가실에서 청송과 관련한 소설을 집필하며 방문객들을 만나고 있다. ‘객주’는 19세기 말 조선시대 보부상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이야기한 한국 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청송=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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