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신동빈 롯데 회장이 그룹 쇄신안을 발표했다.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개선하고 새로운 롯데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신 회장은 롯데를 도덕성을 우선으로 하는 기업으로 거듭나도록 하겠다며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별도의 준법경영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양적 성장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질적 성장으로 바꾸겠다는 것은 흠잡을 데 없는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5년간 40조원을 투자하고 7만명을 신규 채용하는 한편 3년 동안 1만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두 손 들고 환영할 계획이지만 마음 한편에 불편한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검찰 수사를 받고 여론 재판대에 올랐던 정치적 배경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개혁안이 투자 확대, 일자리 창출, 정규직 전환 등 정부 입맛에 딱 맞는 메뉴로 채워져 있다는 것부터가 배경 사정을 잘 말해주고 있다. 투자나 고용은 전적으로 기업 내부의 고도의 자율적 상황에서 경영상 판단을 내려야 하는 기업경영의 핵심적 부분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라는 것이다. 얼마 전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의 광복절 특사 후 지난해의 세 배인 5조원 이상을 내년에 투자하겠다는 공격적인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수감생활 중 특사로 풀려난 최태원 SK 회장도 46조원의 ‘통 큰’ 투자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그전에도 비슷한 일들이 되풀이됐다. 정권과 정부 차원에서 기업에 무언가 메시지를 주면 기업이 떠밀린 듯 투자나 채용 계획을 밝히는 일은, 검찰수사 외에도 새 정부가 출범하거나 사회 분위기 쇄신이 필요한 경우 으레 되풀이되던 것이다.
기업들이 수년에 걸쳐 수십억원을 투자하고 채용하는 이런 계획은 나중에 검증하기도 어렵다. 더 큰 문제는 기업 경영에 대중의 오해나 경시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투자와 고용이 아무렇게나 결정돼도 좋은 것일 수는 없다. 손보기식, 먼지털기식 기업 수사 관행도 문제지만 기업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고용과 투자계획을 발표하는 것을 언제까지 불편하게 지켜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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