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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중국 인문기행' (5) 허난(河南)] 20개 왕조의 도읍이던 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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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 < 뉴스웍스 콘텐츠연구소장 >


흔히 ‘중원(中原)’이라고들 한다. 가운데 뜰? 아니면 너른 가운데 벌판? 가운데(中)가 있고, 벌판(原)이 있으니 적당한 풀이다. 원래는 고대 시가 모음집인 《시경(詩經)》에 등장했다. 가운데의 너른 뜰, 벌판을 일컫는 뜻으로 말이다.

중국의 정체성은 대개 서한(西漢·BC 202년~AD 8년) 때 형성된다. 광역의 강토를 구축했고, 한자(漢字)와 한문(漢文)의 문물적 외피가 두껍게 쌓이면서다. 그 시기에 황하(黃河) 중하류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진 문화적 정체성을 지칭하는 또 다른 단어가 바로 중원이었다.

이 중원의 복판은 어디일까. 중국의 핵심을 차지하는 지역 말이다. 지금의 중국 허난(河南)이다. 황하가 지나가는 유역의 남쪽이라는 뜻에서 얻은 이름이 河南이다. 역대 왕조 가운데 20개가 이곳에 도읍을 정했다. 압도적인 수치다.

화약·종이·지남침 나온 '문명 발상지'

이곳 자동차들은 번호판에 豫(예)라는 글자를 붙인다. 지방마다 붙는 간칭(簡稱)이다. 3000여년 전 이곳에 도읍을 정했던 상(商)나라 때 지명이다. ‘상서로움’ ‘복(福)스러움’을 뜻하는 이 글자가 상나라의 대표적인 허난 지명이었는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황하 중하류 지역은 지금 중국의 뿌리를 형성했다고 하는 이른바 ‘문명의 발상지’다. 이론의 여지는 없지 않으나, 대다수 중국인은 아직 그렇게 여기고 있다. 화약과 종이, 지남침(指南針) 등 중국 4대 발명품 중 3대 발명품이 여기서 나왔다.

중국 사상의 한 축을 이루는 《주역(周易)》의 전통 또한 허난의 발명품이다. 노자(老子)와 장자(莊子)가 길을 튼 도가사상의 연원도 이곳이다. 출신 인물 또한 매우 화려하다. 노자와 장자는 물론이고, 중국 시단(詩壇)의 가장 높은 별로 떠올랐던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도 이곳을 고향으로 둔 사람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춘추시대 월(越)나라 왕 구천(勾踐)을 도와 오(吳)나라 부차(夫差)를 제압한 희대의 전략가 범려(范)도 이곳 출신이다. 그는 구천을 도와 통일의 대업을 이룬 뒤 깨끗하게 조정에서 물러나 도주(陶朱)라는 이름으로 강호(江湖)를 떠돌며 돈을 벌어 대단한 부자가 된다.

현재 허난은 중국에서 알아주는 농업(農業) 대성(大省)이다. 인구 또한 9480만명에 이르러 전체 3위다. 중원의 문명은 또한 이 농업을 떠나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중원의 면면한 전통에 농업의 기틀까지 그대로 이어받은 허난은 말 그대로 옛 중국 정체성의 간판이다.

'편견'에 시달리며 하층계층 구성

허난 사람들은 요즘 어떤 대접을 받을까. 아이러니컬하게 이들은 주변 베이징 등 대도시 주琯冗觀壙?‘차별적인 시선’에 시달린다. 잘 속이고, 거짓말을 잘하며, 가짜를 잘 만든다는 혐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각 지역 성장들을 접견하는 자리였다고 한다. 성장들을 접견하던 장 주석이 “다음은 허난성장 차례입니다”라는 행사 진행요원의 말을 들었다.

그러자 장 주석은 안경을 바꿔 낀 다음 허난성장의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혹시 이 사람은 가짜 아니야?”라고 물었다는 얘기다. 허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가짜 제품을 제조해 주변 시장을 혼란스럽게 하는 점을 풍자하려 만들어낸 2000년 초반의 우스개다.

농업에 종사하는 수많은 인구를 지닌 허난은 인구 수출 지역이다. 경제가 발달한 지역으로 날품팔이나 힘든 노동을 위해 떠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이들은 베이징 등 대도시의 가장 낮은 계층을 이룬다. 대도시 사람들은 이들을 깔볼 수 있다. 거짓말을 잘한다거나, 꾀를 잘 부린다는 불만과 함께 말이다. 그런 편견이 아직도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허난은 중국 문명의 복판을 형성한 중원의 전통 계승자다. 자주 넘치는 황하, 이에 따른 피해로 오랜 기간 가난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화려하고 정치한 《주역》의 수리(數理)를 바탕으로 미래를 조망하는 지혜, 노자와 장자의 도가적 은일(隱逸)과 자재(自在), 당나라 시인 두보의 인간적인 진지함을 모두 전통으로 간직한 사람들이다.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의 여느 지역과 다를 게 없다.

유광종 < 뉴스웍스 콘텐츠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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