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첫 황금연휴 '조마조마'
"고위공무원 3만원 미만 식사, 기업 임원들도 눈치 안 보겠나
고급호텔 등 장기적으로 타격"
부산영화제도 행사 잇단 취소
연휴에도 모임 대신 자기계발
극장·헬스장·어학원 반사이익
'김영란법 족보' SNS 떠돌기도
[ 심은지 / 이관우 / 김동현 기자 ]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황금연휴 경기를 꽁꽁 얼리고 있다. 법 시행 이후 첫 주말을 앞두고 골프장들은 ‘예약절벽’에 직면했다. 특급 호텔은 “평년 수준의 예약이 들어온다”면서도 “공무원도 3만원짜리 식사를 하는 판에 기업이라고 3만원이 넘는 식사를 하겠느냐”며 향후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소비의 ‘트리클다운 효과’가 사라질 것이란 우려마저 나온다.
예약 취소 사태 맞은 골프장
골프장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경기 고양의 한 유명 회원제 골프장은 “10월 1~3일 연휴에 들어온 비회원 손님 6팀이 예약을 모두 취소했다”고 말했다. 이 골프장은 9월 중순까지만 해도 개천절 황금연휴 ‘풀부킹’에 휘파람을 불던 터였다. 하지만 지난 28일 김영란법이 시행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변심’한 고객이 잇따르면서 오전 7~8시 인기 시간대에도 빈 팀이 속출했다.
이번 주말에 비 예보가 있긴 하지만 가을 성수기임을 감안하면 전국 골프장엔 냉기가 돌았다. 부산 기장군에 있는 한 회원제 골프장은 황금연휴 중 일요일에 20팀도 채우지 못했다. 지난 주말 60여팀을 돌리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퍼블릭 골프장은 예약절벽에 부딪히지는 않았지만 ‘객단가’ 높은 법인카드 고객이 줄어들면서 고심에 빠졌다. 프로숍(골프용품 및 선물용 농산물 판매점)과 식당 매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용한 황금연휴 될 듯
호텔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삼성동에 있는 5성급 호텔 인터컨티넨탈은 김영란법 시행일인 28일부터 1인당 3만원짜리 연회장 서비스를 마련했다. 기본 식비가 10만원 안팎인 특급 호텔업계에선 이례적인 일이다. 이 호텔 관계자는 “각종 세미나 등을 유치하기 위해 3만원짜리 연회 서비스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다른 특급 호텔들은 겉으론 “김영란법이 매출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며 ‘표정관리’를 하고 있지만 내심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예약 취소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선 직영 레스토랑 예약률이 김영란법 시행 이전에 비해 30%가량 줄었다. 이 호텔 관계자는 “코스 요리가 보통 1인당 8만~9만원이기 때문에 법 시행 여파가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가족 단위가 주요 고객인 콘도 등 중저가형 숙박 시설은 김영란법 ‘무풍지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화콘도만 해도 황금연휴 예약률이 100%에 달했다.
김영란법으로 몸을 사리는 사람이 늘면서 이번 연휴에는 책을 읽거나 극장가를 찾는 사람이 늘어날 전망이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어학원도 김영란법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송준태 민병철스피킹웍스 대표는 “수강생들은 혼자 필요한 과목을 인터넷으로 검색한 뒤 학원에 등록하는 일이 많은데 최근 인터넷 학원 광고 조회 수가 늘어나고 있다”며 “신규 학생은 물론 재등록 학생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김영란 족보’ 잇따라… “법적 근거 없어”
전문가들은 관행과 준법의 경계가 모호한 탓에 당분간 ‘자나 깨나 김영란법 조심’이 신풍속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블로그, 메신저 등을 통해 이른바 ‘김영란법 족보’가 나돌고 있다. 직업·업종·상황별로 김영란법과 ‘란파라치(김영란법+파파라치)’에 대응하는 방안이 담겼다.
가장 화제가 된 글은 ‘란파라치에 대응한 공직자 예상 행동수칙’이었다. 이 수칙에는 ‘직무 관련자의 기프티콘은 지체 없이 신고하라’ ‘제자나 부하에게는 물 한 잔도 얻어먹지 마라’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계속적인 거래가 오갈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사귀어라’ 등의 자조적인 수칙도 끼어 있다.
이재원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열거된 수칙은 대부분 법적 근거가 없다”며 “‘자기가 먹은 음식값은 자기가 내라’ 정도의 수칙을 제외하곤 나머지는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직무 관련성과 금액 등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 없이 ‘무조건 피하라’는 조언은 사회관계망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산국제영화제까지 ‘불똥’
부산국제영화제는 김영란법 때문에 타격을 받게 됐다. 주최 측은 개·폐막식에 초청하는 게스트 중 김영란법 대상자에게는 숙박 및 항공요금을 지원하지 않기로 했다. 대학교수나 공공기관 관계자, 공공기관 직무를 겸임하는 영화인 등이 대상자다. 이들 중 일부는 부산행을 취소했다. 4대 배급사인 CJ E&M과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 , NEW 등은 올해 ‘배급사의 밤’ 행사를 열지 않기로 했다. 부산영화제 관계자는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거나 축소되고 있지만 공식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된다”고 말했다.
심은지/이관우/김동현 기자 summ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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