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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재 칼럼] 국회에 의인 1명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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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이권, 집단 이익이 국회 지배
국회 권력행사 대부분은 헌법위반
국회의원 저질화의 법칙 '작동 중'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300명 국회의원 중 정부 예산서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서너명밖에 없다는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고백은 진실일 것이다. ‘누가 예산서를 해독할 수 있는지’를 궁금해 하며 구석진 자리에서 손가락을 꼽아보는 의원들의 비루한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그러면 그렇지라고 안도하는 의원이 많을 것이다. 이정현 대표는 국민 중에 국회의 실상을 아는 사람은 10%도 안 될 것이고, 만일 실상을 안다면 몽둥이를 휘두르고 돌팔매질을 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10%에도 이르지 못하는 것은 ‘국민’이 아니라 거꾸로 ‘의원’일지도 모른다. 국민이 국회의원을 얼마나 경멸하는지 아는 국회의원 숫자를 따지면 필시 10%를 밑돌 것이다. 의원들은 오는 연말 모임에서도 마이크를 잡고 건배사를 할 것이고, 늦게 와서 가운데 자리에 끼어 앉을 것이고, 국정에 수고가 많다는 체면치레 인사를 받을 것이고, 동창회 등 각종 모임에서 내빈으로 소개되는 낯간지러운 공치사를 받을 것이고, 언제나 그렇듯이 공사다망하다며 藍?자리를 뜰 것이다. 그러나 등 뒤로 와서 꽂히는 싸늘한 눈총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아니 그런 꼴이 보기 싫어서 아예 그 자리에 나오지 않는 좋은 벗들이 점점 늘어간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국회의원은 점차 그런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무식이 탄로나는 것이 두려워 말을 꾸며야 하고, “존경하는 의원님!” 따위의 공허한 벽제소리를 앞세우며, 떠억하니 똥배지를 달고, 누구든 무릎을 꿇려놓고 집단으로 큰소리를 치는 데는 이골이 났다.

그러나, 예산서를 읽지 못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흠결이 될 수는 없다. 진짜 문제는 휘둘러대는 갑질이다. 국회의원 중에 의원의 권한과 의무를 정한 헌법 조항을 읽어본 이가 거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렇지 않다면 김영란법이 저렇게 될 리가 없고, 쪽지예산이 저렇게 핑핑 날아다닐 리가 없고,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제멋대로 장관 해임 건의를 결의할 리도 없고, 사드 문제로 TK 의원들이 저렇게 날뛸 리가 없고, 저마다 입만 열면 경제민주화를 떠들 리도 없고, 국회를 행정·사법을 뛰어넘는 무소불위의 인민법정으로 둔갑시키는 일도 없을 것이다.

선출직은 예외로 해버린 김영란법만 해도 그렇다. 헌법 제46조3항은 “국회의원은 청렴의 의무가 있고(제1항), 국가의 이익(지역이나 집단의 이익이 아닌)을 우선해야 하며(제2항), 국가 공공단체 또는 기업체와의 계약이나 그 처분에 의하여 재산상의 권리 이익 또는 직위를 취득하거나 타인을 위하여 그 취득을 알선할 수 없다(제3항)”고 규정해 민원 청탁은 의원 직무에서 아예 배제하고 있다. 더구나 민원은 행정부의 고유 업무다. 민원을 처리한다는 명목으로 국회법까지 개정했으니 밥 먹듯이 위헌?입법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국회다. 예산 편성권은 정부에, 심의권은 국회로 한 것이 헌법이고, 제57조는 정부 예산의 증액이나 새로운 비목 설치를 금지하고 있지만 쪽지라는 이름으로 정부 편성권을 사실상 사문화시켜 국회로 귀속한 것 또한 대한민국 국회다. 무식하지 않고는 결코 이런 위헌적 횡포를 자행할 수 없다.

문제는 국민들이 ‘그런 일에 적합한 사람’을 의원으로 뽑는다는 점이다. 선거구민은 한 표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가장 저열한 인물을 서슴없이 국회의원으로 선출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야 그를 지역과 개인의 이익에 군말없이 봉사시킬 수 있고, 터무니 없는 청탁에 얽어맬 수 있고, 부당한 예산을 따오고, 온갖 불합리한 숨겨진 이익에 철면피한 들러리로 내세울 수 있다. 지금 국회의원들은 바로 그것을 하라고 지역에서 뽑혀 올라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국가의 보편적 이익은 사라지고 지역이나 집단의 사적이익을 구축하는 데 온 국회가 허우적대기에 이른 것이다. 이정현 대표는 예산서를 읽을 줄 아는 3명에 대해 말했지만 보편적 국가 이익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따지면 1명이나마 의로운 분이 있겠는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은 저렇게나 많은데.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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