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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국회' 그 극치를 보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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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 국정' 따진다는 대정부 질문…오후 2시 의원 8명뿐·앉으면 카톡

총리·장관 붙잡아놓고…출석한 60명 중 20명은 '휴대폰 삼매경'

오전 개의 때 반짝 출석…썰물처럼 빠져나가
의사정족수 60명 못채우고 회의 진행 일쑤
'판박이 질문 - 앵무새 답변'…조는 의원 속출



[ 홍영식 / 유승호 기자 ]
20일부터 23일까지 4일간 이어진 국회 대정부 질문은 ‘무능 국회’의 극치를 보여줬다. 회의 지각과 낮은 출석률, 반복되는 비슷한 질문 등 19대 국회의 한심한 행태가 그대로 재연됐다. 걸핏하면 정부를 향해 무능하다고 비판하는 국회가 더 무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이 열린 지난 22일 오후 1시55분. 국회에는 의원들의 본회의 참석을 독려하는 방송이 연이어 흘러나왔지만 본회의 속개 예정 시간인 오후 2시에 본회의장에 앉아 있는 의원은 여덟 명뿐이었다. 5분 정도 지나 가까스로 개의 성원(재적 의원 5분의 1인 60명)이 넘어서면서 본회의가 재개됐다. 대정부 질문을 마칠 때쯤 재석 의원은 40명 안팎에 불과했다.

시작할 때만 ‘반짝’ 출석률이 높았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 마칠 때쯤에는 회의장이 텅 비는 게 대정부 幸??현주소다. 대정부 질문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질문하는 의원과 답변하는 국무위원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23일 열린 교육·사회·문화분야 대정부 질문에서는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표결을 놓고 여야가 고성과 삿대질에 가벼운 몸싸움까지 벌이는 난장판을 연출했다.

반복되는 의원들의 비슷한 질문에 ‘판박이 답변’이 되풀이됐다. 대정부 질문 무용론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국회의원들의 저조한 출석률 탓에 위법 논란까지 나오고 있다.


국회법 73조는 본회의는 재적의원 5분의 1 이상 출석으로 개의하고, 회의 중 이에 못 미칠 때 국회의장은 회의 중지 또는 산회를 선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교섭단체 대표가 의사 정족수 충족을 요청하지 않으면 회의를 계속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지난 20~23일 대정부 질문은 시작 후 의원들이 하나둘 회의장을 떠나 정족수인 60명을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국회 관계자는 “본회의 중 의사정족수를 채우지 못하고 회의를 한 것이 위법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법 정신을 어긴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천편일률 질문에 의원들도 외면

국회의원들조차 대정부 질문을 외면하는 배경에는 ‘판박이 질문’과 ‘앵무새 답변’이 있다. 20일 정치 분야 대정부 질문에선 각종 의혹을 받고 있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거취에 관한 질문이 되풀이됐다.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황교안 국무총리를 상대로 “대통령에게 우 수석 경질을 건의할 의사는 없느냐”고 물었다. 조배숙 국민의당 의원도 황 총리에게 “우 수석 해임을 건의하겠느냐”고 말했다. 박용진 더민주 의원 역시 “대통령은 우 수석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고 했는데 총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비슷한 취지의 질문을 했다.

황 총리는 “검찰 수사 결과를 봐 달라” “진상을 밝혀서 처리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등 엇비슷한 답변을 반복했다.

20일 정치 분야와 21일 외교·안보·통일 분야 대정부 질문에선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 등 7명이 자위적 차원의 핵무장을 주장했고, 황 총리는 그때마다 “비핵화는 한반도로부터 시작된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22일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에선 더민주 박광온 이언주 최운열 의원과 박주현 국민의당 의원이 법인세 인상 필요성을 제기했고,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업 투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법인세 인상은 어렵다”는 같은 답변을 계속했다.

◆참석해도 졸거나 메신저 대화

비슷한 질문과 답변이 반복되다 보니 의원들 상당수는 자리를 지키고 있더라도 졸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경우가 많다. 전희경 새누리당 의원은 21일 “(표창원 더민주 의원을) 옆자리니까 확 패 버리라고. 지금 주 차뿌까(마구 차 버릴까)” 등의 메시지를 자신의 비서관과 주고받았다.

표 의원이 트위터에 “국정 전반에 불합리와 비상식이 넘친다”는 글을 올린 것을 보고 비서관과 모바일 메신저로 대화하며 표 의원을 비판한 것이다.

20일 오전 11시께 대정부 질문 출석의원 60여명 가운데 20여명은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의원들이 대정부 질문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본회의장 한쪽에 삼삼오오 모여 귓속말을 주고받는 것도 자주 목격되는 장면이다. 한 여당 초선 의원은 “심도 있는 정책 질의가 이뤄지지 않으니 주목도가 떨어진다”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솔직히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정책 현안보다 정치 쟁점을 놓고 공방을 벌이는 일도 잦다. 22일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야당 의원들은 경제정책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관련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송영길 더민주 의원은 황 총리를 상대로 자신의 질의시간 26분 중 절반이 넘는 15분 동안 두 재단이 기업들로부터 기부금을 모금한 과정을 추궁했다.

대정부 질문이 정쟁의 장이 되기 일쑤다. 여야 간에 고성과 삿대질이 오가는 광경도 적지 않다. 송 의원이 황 총리의 답변에 대해 “살살 기름장어처럼 빠져나가면 안 된다”고 큰소리를 치자 새누리당 의석 곳곳에서 “뭐하는 거야” 등 야유가 나왔다.

7월5일 대정부 질문에선 김동철 국민의당 의원과 이장우 새누리당 의원이 “질문할 테니까 간섭하지 말란 말이야” “어디다 반말하세요” 등의 고성을 주고받았다.

홍영식 선임기자/유승호 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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