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사 상대 소송 각하 이끌어
제조물책임팀장 박교선 변호사
"기업 대상 부당한 소제기 제동"
[ 이상엽 기자 ] 알코올중독으로 각종 질병을 얻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 본인 및 가족 등 26명이 정부와 주류회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2014년의 일이다. ‘술’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며 개인이 몇 차례 소송을 제기한 적은 있었지만 공익을 내세운 소송은 이례적이다. 이들은 알코올중독 예방을 위한 공익방송을 요구하는 한편 술병에 알코올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라벨을 붙일 것을 주장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주류회사들을 상대로 판매금지를 요구하는 가처분까지 신청했다.
다급해진 주류회사들은 ‘제조물책임법’에서 최고의 실력가들을 찾았고, 긴 싸움 끝에 지난 6월 각하 결정으로 분쟁은 마무리됐다. 주류회사들에 승소 낭보를 안긴 이들은 바로 법무법인 세종의 ‘제조물책임팀’이다. 이 팀은 국내에서 최초로 담배 소송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제조물책임법’은 소비자주권이 커지는 요즘 일반인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법 중 하나다. 2000년 제정된 이 법은 제조물의 결함으로 사용자들이 피해를 봤을 때 배상해주는 요건과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제조물 범위는 술, 담배, 자동차 브레이크, 고엽제, 의료기, 각종 식품류까지 다양하다.
팀장을 맡고 있는 박교선 변호사(사법연수원 20기)는 “이번 판결은 제조회사를 압박해 합의금 등 근거 없는 보상을 얻어낼 목적으로 소송을 거는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며 “원고 측에서 공익성을 계속 부각시켜 쉽지만은 않은 소송이었다”고 말했다.
세종 측은 이번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해 ‘원고 자격이 없어 소송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하는 데 주력했다. 민사소송이 적법하게 성립되기 위해서는 △권리-의무 관계가 분명히 있고 △제조물에 명확한 결함이 있어야 하며 △그 결함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했다는 인과관계가 증명돼야 한다.
양계성 변호사(23기)는 “원고 측이 주장한 ‘적정음주량’ 표시 라벨 의무는 상당히 비현실적인 개념”이라며 “개인마다 적정음주량이 다르기 때문에 원고의 주장을 일반화할 수 없다는 걸 증명하려고 애썼다”고 설명했다. 소비자주권이 발달한 미국이었다면 어떤 판결이 나왔을까.
김우균 변호사(37기)는 “지나친 음주가 위험하다는 건 오랫동안 보편적으로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경고할 필요가 없다는 판결이 미국 법정에서도 났었다”고 소개했다.
박 변호사는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뿐 아니라 B2B(기업 간 거래) 기업도 제조물책임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회사를 상대로 컴퓨터나 정보기술(IT) 서버를 판매하는 기업도 제품에서 기술적 오류가 발생해 피해가 생긴다면 이를 고스란히 배상해줘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수출이 많은 국내 기업들은 각 국가의 제조물책임법에 해당하는 법에 대해서도 대비를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출 제품에 결함이 생겼을 경우 미국같이 광범위한 증거채택제도(디스커버리)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있는 나라에서 소송이 걸리면 큰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엽 기자 ls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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