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래빗 데이터저널리즘 'DJ 래빗' 7회
기상청 10년 치 예·결산 내역 단독 입수 분석
10년 간 총 2조5588억원 세금 씀씀이
'8032억원' 10년 간 오보 잡는 데 지출
문제의 슈퍼컴퓨터 2259억 투자 '단일 최대'
'전문인력 양성' 10년간 62억4100만원 투입
수치예보 모델, 예보관 투자 이미 10년 투자
예보 정확도는 '제자리'..문제는 또 예보관?
[편집자 주] 지난 달 29일 고윤화 기상청장 이 끝내 고개를 숙였습니다. 역대급 폭염을 기록한 지난 여름 유난히 잦았던, 날씨 예측 실패에 대한 대국민 사과였습니다. "다음 주 수그러든다"던 폭염 예보는 8월 매주 4차례 빗나갔고, 시원한 비 뿌린다던 하늘은 후끈한 열기로 가득했습니다.
고 청장이 그렇다고 사과만 한 건 아닙니다. '약방의 감초' 마냥 예보 정확도를 높일 대책을 또 내놓았죠. 당장 날씨 오보를 줄일 단기 대책으로 ▲ 유능한 예보관 확보 ▲ 평생예보관 제도 도입 ▲ 적극적 소통 강화를 꼽았습니다. 예보관의 역량, 즉 사람 문제 가 가장 시급하다는 것이죠. 중·장기 대책으론 ▲ 한국형 수치예보모델 현장 적용 등이 눈에 띕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대책에 그다지 새로운 게 없습니다. 어제 오늘 문제가 아니거든요. 10년 동안 꾸준히 추진해온 대책들입니다. 올해도 오보 논란에 휩싸인 기상청은 어쩌면 총체적 난국에 직면한 듯 합니다.
뉴스래빗이 2006년부터 2015년까지 기상청의 10년치 예·결산내역을 단독 입수, 분석 한 결론입니다. 10년 동안 8032억원을 쏟아붓고도 특이 기상에 대한 대비도, 예보관 처우와 역량 개발도, 한국형 수치 예보 모델 적용도 뭐 하나 잘 된 게 없습니다. 10년 전 구멍이나, 지금 구멍이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 1 : 기상청 예·결산 '비공개'…10년치 정보공개청구
기상청의 폭염 관련 오보 행진이 한창이던 지난 8월. 뉴스래빗은 기상청의 업무 방 藪?문제는 없는지 예결산 내역을 파악하기 위해 기상청 홈페이지에 접속했습니다. 대부분 기관들은 예·결산 내역을 공개합니다.
기상청은 어떨까요? 공개 정보를 명시한 사전공개목록에 예산정보가 있다고 했지만 기상청 홈페이지 '예산·결산 정보' 게시판은 텅 비어있습니다. 우연히 누락된 걸까요, 의도적으로 공개하지 않은 걸까요? 뉴스래빗은 정보공개청구 제도를 이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열람할 수 있어야 하는 공개 정보를 열흘 후인 지난 달 16일에야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 2 : 기상청 10년 간 2조5588억원 세금 씀씀이
10년 전인 2007년. 기상청은 예보 정확도의 3요소로 ▲ 관측 성능(32%), ▲ 수치예보모델 정확도(40%), ▲ 예보관 역량(28%)을 꼽고 투자를 늘려왔습니다. 그렇게 기상청이 지난 10년 간 쓴 예산, 즉 국민의 세금은 2조5588억원 으로 확인됐습니다. 뉴스래빗이 정보공개 뺑만?통해 받은 예·결산 전체 내역 중 '세출 결산'을 모두 합한 금액입니다.
지난 해 기상청 총 지출 3754억원 중 43%인 1626억원은 기상청 본청·지방청 인건비 및 기본 경비, 관측 장비 운영 및 관리 등에 쓰였습니다. 이 가운데 인건비와 기본 경비가 전체 운영 자금의 60~70% 로 가장 많습니다. 즉 한 해 예산의 24~42%는 예보관 등의 직원 월급 및 기타 경비로 쓰인거죠.
# 3 : 8032억원, 10년 간 오보 잡는 데 투자
이 같은 운영 경비를 뺀 예산 약 30%는 기상청이 매해 예보 정확도 향상에 썼습니다. 뉴스래빗이 확인한 결과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 동안 8032억원 이 '오보 잡기'에 투입됐습니다. 아마저도 최소한의 항목만을 잡은 겁니다. 이는 10년 지출액 2조5588억원의 3분의 1 에 달하는 천문학적 액수입니다.
'오보 잡기' 8032억원에 颱沌?항목은 예보 정확도 개선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최소한의 항목입니다. 예보 정확도 결정의 3요소인 ▲ 슈퍼컴퓨터, ▲ 수치예보모델, ▲ 예보관 관련 항목과 더불어 오보 논란 때마다 기상청이 문제삼는 ▲ 대국민 기상 인식 제고 예산도 포함했습니다.
고 청장이 올해 주요 대책으로 발표한 ▲ 유능한 예보관 확보, ▲ 평생예보관 제도 도입 ▲ 적극적 소통 강화, ▲ 한국형 수치예보모델 현장 적용 등에 들어가는 예산이 바로 여기에 포함되죠. 고 청장의 대책이 혜성처럼 등장한 비책이거나 새로운 투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 4 : 지난해 '오보 잡기' 예산 첫 1000억 돌파
연도별로 살펴볼까요.
2006년 1530억원이던 기상청 지출은 2013년 처음 3000억원을 돌파한 뒤, 지난해 3654억원까지 올랐습니다. 10년 새 238% 증가입니다.
한 해 총 지출 중 오보를 잡는데 투입한 비용도 꾸준히 상승했습니다. 2006년 429억원에서 10년 만인 지난해 2.5배 뛰었습니다. '오보 잡기'에 들어간 예산 비중도 2009년엔 38%, 2010년엔 36%까지 올랐죠.
2015년 29% 정도로 비중은 낮아졌지만 실제 투입 예산은 기상청 설치 이래 처음으로 한해 1000억원을 넘었습니다. 지난해 1년 지출(3754억원)의 3분의 1(1074억원)에 달합니다. 전체 지출 대비 비중도 30% 선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죠.
앞서 설명드린 것처럼 매해 40%~60%를 기상청 운영에 꼭 필요한 데 쓰고 있으니, 나머지 30~40% 예산은 10년동안 매년 이미 예보 정확도 향상에 투자해 온 겁니다.
# 5 : 문제의 슈퍼컴퓨터, 10년 간 2259억원 투입
'오보 잡기' 투자 가운데 문제의 '슈퍼컴퓨터' 가 단일 지출로 가장 컸습니다. 임대료와 운영비, 시설 관리비 등을 모두 합해 지난 10년 간 2259억원을 쏟아부었죠. 기상청 10년 치 전체 지출 2조5588억원의 10%에 달합니다.
기상청은 2000년 1호기를 시작으로 2005년, 2010년, 2015년 지속적으로 새 모델을 도입했습니다. 2006년(153억원)와 비교하면 2015년, 10년 새 관련 예산은 171% 수준으로 늘었습니다. 2008~2009년엔 슈퍼컴퓨터 관리 전용 건물을 짓는데 241억원을 썼습니다.
# 6 : '단기 예보' 오차 2011년 이래 제자리
2200억원짜리 슈퍼컴퓨터들은 제 역할을 했을까요.
실망스럽게도 예보 정확도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단기 예보 중 최고·최저기온 오차는 2011년 이후 5년 간 0.1℃ 차이로 평행선을 걷고 있습니다. 3~7일 뒤 날씨를 예측하는 중기 예보에선 최고·최저기온 오차가 최근 3년 간 도리어 커졌습니다.
기상청이 슈퍼컴퓨터 도입에도 정확도 개선 효과를 보지 못한 이유는 뭘까요.
슈퍼컴퓨터가 제 역할을 하려면 최적화된 예측모델과 예보관의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고 청장을 비롯한 기상청 인사들이 슈퍼컴퓨터 관련 질타를 받을 때마다 "슈퍼컴퓨터는 하드웨어일 뿐 그 자체가 예보 정확성을 보장하진 않는다"는 식의 해명을 내놓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죠.
그렇다면 수치예보 모델 개발이나 예보관 역량 강화는 돈이 없어서 못한 걸까요.
# 7 : '수치예보 모델', '예보관 역량' 투자 10년 간 해왔다
뉴스래빗 확인 결과, 기상청은 슈퍼컴퓨터 외에 수치예보 모델 개발, 예보관 역량 향상에도 지속적으로 예산을 투입해왔습니다.
우선 기상청은 지난 10년간 한국형 수치예보모델 개발에 총 425억원을 썼습니다. 2006년(8억6500만원), 2007년(9억6700만원), 2008년(9억7300만원)은 8억~9억원 선에 불과했죠.
그러나 2011년 기상청 산하 수치예보 모델 개발 전담 기구인 한국수치예보모델사업단(한수예)이 출범한 뒤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지난해에만 85억2500만원이 투입 됐습니다. 2006년 사업 시작 때와 비교하면 10년만에 관련 예산이 10배 늘었습니다. 수치예보 모델 개발은 2019년에 끝납니다. 13년여 간 총 946억원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입니다.
기상청은 1997년부터 써온 일본 기상청 수치예보 모델을 지난 2010년 영국 기상청 모델로 바꿨습니다. 영국 기상청에 라이선스 비용으로 해마다 4만 파운드(한화 약 6000만원)를 지불하고 있죠.
다행히 영국 수치예보모델과 슈퍼컴퓨터 3·4호기 도입이 맞물려 전지구 수치예측모델 정확도와 계산 능력 수치는 올라갔습니다. 도입 직전인 2009년 58.9m던 전지구 수치예측모델 정확도가 지난해엔 41.87m로 17m 가량 개선 됐죠. 수치예측모델의 계산 능력 또한 슈퍼컴퓨터 1호기 시절 2.5Tflops(테라플롭스)에 불과했던 게 2·3·4호기 도입에 따라 18.5→758→1205로 급상승했습니다.
# 8 : '전문인력 양성' 62억4100만원 투입
계산 능력은 좋아졌는데, 단기 중기 예보의 오차는 왜 개선되지 않을까요. 예보 정확도 핵심 3요소 중 마지막, 바로 '예보관의 역량' 문제 입니다. 고 청장이 내놓은 단·중·장기 대책을 아울러 가장 많이 언급된 과제죠. "예보관의 사전학습 및 심층연구가 미흡했다"고 고 청장은 안타까워했죠.
그렇다면 말입니다. 기상청은 전문 예보관 양성에 어떤 사전 투자를 해왔을까요. 고 청장의 해명과 관련한 투자 또한 이미 시행됐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기상청은 '전문인력 양성' 지출 항목으로 지난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40억8400만원을 썼습니다. 2009년 4억800만원에서 지난해 7억5600만원으로 157% 늘었죠.
이외에도 '기상교육 e-러닝 시스템', '기상교육 정보시스템' 등에 2006년부터 현재까지 21억5700만원을 썼습니다. 2억원을 밑돌던 한 해당 지출 금은 2014년부턴 3억5000만원 이상으로 불어났죠.
위 항목을 모두 합하면 2006년부터 기상청이 전문인력 양성에 투입한 금액은 총 62억4100만원에 이릅니다. 매년 수억원 씩 지금까지 60억원을 넘게 전문인력 양성에 써놓고도 고 청장은 "현재 유능한 기상청 예보관은 10명에 불과하다"고 자백 한 응都求?
# 9 : 기상청 '투자 실패' 시인한 셈…또 대책은 '사람'?
기상청은 지난 2011년 '기상업무 발전을 위한 중장기 정책개발 기획연구' 보고서에서 "기상 분야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예산 확대가 필요하다" 고 주장했습니다. 국내총생산(GDP) 및 국가 예산 대비 우리 기상청 예산이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너무 적다는 근거도 제시했죠.
효과를 본 걸까요. 2011년 보고서를 기점으로 기상청 예산은 가파르게 상승했습니다. 2011년 2639억원이던 한 해 지출은 2015년 3754억원으로 5년 새 42%나 늘었습니다. 예·결산 내역대로 기상청의 씀씀이 역시 꾸준히 커졌죠.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기상청 예산이 증액되는 사이, 기상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커졌다는 데 있습니다. 이번 고 청장의 '재탕, 삼탕' 대책 발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10년 간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은 슈퍼컴퓨터 도입·수치예보 모델 개발·예보관 역량 강화 등 3대 주요 시스템이 여전히 제 역할을 하지 못했음을 시인한 셈이니까요.
기상청은 2006년 4월에도, 2007년 2월에도, 2010년 7월에도 심각한 기상 예측 실패로 국민에게 사과한 바 있습니다. 6년만에 다시 대국민 사과에 나선 고 청장이 다시 예보관, 즉 사람의 문제로 책임을 돌리는 모습은 존경받는 수장의 모습이 아닙니다. 평생예보관 제도는 2009년에도 도입에 실패한 바 있는 정책입니다.
더욱이 기상청은 지난 그간 사람보다 시스템 구입 및 운영에 더 집중해왔습니다. 10년간 쓴 '오보 잡기' 예산 8032억원 중 예보관 역량 강화 관련 지출은 단 0.77% ,62억원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약 8000억원의 대부분은 슈퍼컴퓨터 및 수치 모델 개발 등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시스템 구축에 투입됐습니다. 예보관인 사람보다 기계와 프로그램의 분석 및 판단에 더 가중치를 두려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예보관의 능력과 인원 부재를 탓하는 건, 그간 기상 뼈?조직 전략 및 비전 수립이 허술했다는 방증입니다.
고 청장께 묻습니다. 전문 예보관을 10명에서 100명으로 늘릴 수 있도록 예산을 또 증액하면 날씨 오보는 정말 줄어들 수 있나요? 기상청을 평생 직장으로 보장하겠다는 '평생 예보관제' 도입이 진정 해결책인가요? 설령 예보관 역량 강화가 또 정답이라고 한들, 잦은 날씨 오보에 화가 난 국민들이 기상청의 이 같은 정책을 지지하고 응원할 수 있을까요?
올 여름 폭염으로 고통받은 국내 온열 질환자는 2075명, 사망자는 역대 최다인 17명이었음을 꼭 기억해주세요 !.!
▼ 뉴스래빗은 기상청 10년 치 예결산 내역 자료를 여러분께 공유드립니다.여러분 모두의 방식으로 분석하고, 뉴스래빗보다 더 건강하고, 발전적인 사회적 메시지를 찾아낼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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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J 래빗? 뉴스래빗이 고민하는 '데이터 저널리즘(Data Journalism)' 뉴스 콘텐츠입니다. 어렵고 난해한 데이터 저널리즘을 줄임말, 'DJ'로 씁니다. 서로 다른 음악을 디제잉(DJing)하듯 도처에 숨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발견한 의미들을 신나게 엮여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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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김민성, 연구= 강종구 한경닷컴 기자 jongg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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