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한일문화
서로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어야
국중호 < 일본 요코하마시립대 경제학 교수 >
흔히 한국 경제가 몇 년 또는 몇 십년의 터울을 두고 일본 경제를 닮아간다고 한다. 그런 징후로 저출산 고령화와 저성장 진행이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들 한다. 이런 언급은 일부 피상적 징후가 엇비슷하게 나타남을 지적하는 데 불과하다. 양국 경제 간에는 그 근저에 깔려 있는 사고방식 차이가 커, 냉정한 진단과 이성적 대처가 요구된다. 한·일 경제의 근본적 차이를 ‘넓고 얕게 vs 좁고 깊게’, ‘디지털과 아날로그’, ‘흐르기(flow)와 쌓이기(stock)’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우선 ‘넓고 얕게’와 ‘깊고 좁게’를 짚어보자. 변화무쌍한 한국에서는 어떤 일에 골똘히 집중해 일가견을 이루기가 참으로 어렵다. 그런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는 행동패턴이 이뤄지다 보니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뭐 돈 될 거 없나’ 하는 쪽을 찾게 된다. 한국이 ‘넓고 얕게’라는 박천(博淺)의 일반인(generalist)을 숱하게 양산하는 이유다. 진득하게 파고드는 일본에선 각자 주어진 일에 충실할 것을 독려한다. 자신의 역할에 머물며 남의 집 담 너머까지 넘보려 하지 않는다. 한우물 파기가 지배적인지라 ‘좁고 깊게’라는 협심(狹深)의 전문인(specialist)이 포진한다. 한국의 일반인은 요란하게 바쁘지만, 일본의 전문인은 조용하게 바쁘다.
다음으로, ‘디지털과 아날로그’로 대비되는 희비 쌍곡선이다. 거의 모든 산업에서 뒤져 있던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고 앞서가는 분야가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이다.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한국인의 디지털 속성이 ICT에 잘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인은 조직 내 사람들과 연계하며 그동안 해오던 방식을 조금씩 개선해가는 아날로그 사고에 익숙하다. 하여 일본은 아날로그 기술과 부합하는 자동차나 기계장비 산업에서 강점을 발휘한다. 디지털 한국, 아날로그 일본이다. 삼성 갤럭시가 현대차보다 향후 일본 시장에서 먹혀들 여지가 더 크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흐르기와 쌓이기’로 대변되는 한 축이다. 대륙과 일본 사이에 대롱처럼 위치한 한반도는 이것저것 싸잡아 흐르는 플로(flow) 속성이 역력하다. 쌓인 자산을 금방 말아먹기도 하고 불쑥 불어나게도 한다. 소득, 소비, 저축과 같은 플로 변수와 자산, 부채, 자본과 같은 스톡 변수 간에도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한편 대륙의 끝 섬에 자리 잡은 일본은 갖가지를 쟁여 쌓아두는 스톡(stock) 소질이 있다. 펑펑 써대기보다 절약을 하나의 문화처럼 받아들인다. 일본의 거품경제 붕괴(1990년대 초) 이후를 ‘잃어버린 20년’이라 하지만 거덜나긴커녕 가구당 저축액은 늘어나고 있다(2010년 1657만엔, 2015년 1805만엔. <가계조사>).
위에서 든 세 축은 각각 畸물?일본을 대비한 표상(表象)들이다. ‘넓고 얕게’라는 박천의 일반인, 빠른 반응을 추구하나 왠지 불안이 함축된 디지털, 나쁜 것도 바꾸고 좋은 것도 바꾸는 플로, 이들 속성은 한국의 기질을 상징한다. ‘깊고 좁게’라는 협심의 전문인, 반응은 느리지만 안정감을 내포한 아날로그, 좋은 것도 쌓이고 나쁜 것도 쌓이는 스톡, 이들 속성은 일본의 속내를 드러낸다.
한·일 간 일장일단(一長一短)을 보완해줄 나라가 옆에 있다는 것은 서로에게 행운이다. 지난(至難)한 일일지라도 상대국을 활용한, ‘넓고 깊게’라는 박심(博深)의 추구,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균형, 플로와 스톡의 조화가 높은 품격과 넉넉함을 가져다준다.
국중호 < 일본 요코하마시립대 경제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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