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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가 브레인이 없다 (4)] '최고 두뇌' 모인 한은의 소심증…민감한 이슈엔 '침묵 또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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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탈출 해법 제시 못하는 한은

저물가·고령화·부채 급증…위기감 높지만 목소리 안내

상반기 수시보고서 급감…2013년 36건→올해 14건
애써 분석해놓고 공개 꺼려…"혼란 키운다" 걸러내기도
"한은 스스로 시야 넓혀 국가 과제 해결책 내놔야"



[ 김유미/심성미 기자 ] 한국은행 조사국은 핵심 중의 핵심 조직이다. 여기서 내놓는 경제 분석과 전망이 통화정책의 근거가 된다. 서울 남대문로 본관에 근무하는 1000여명 가운데 100여명이 조사국으로 출근한다. 외국에서 공부한 석·박사 출신도 많다.

과거 조사국 보고서는 영향력이 막강했다. 정부 거시정책의 최고 참고서였다. 그만큼 조사국의 자부심도 컸다. 한은 출신 한 관계자는 “한은이 정책기관은 아니지만 정부가 큰 그림을 그릴 때마다 역할을 했다”며 “그 중심에 조사국이 있었다”고 말했다.

정치적 입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데다 국제 흐름에도 밝은 한은맨들은 한국 경제를 누구보다 긴 시야에서 볼 수 있었다. 관료들도 “1990년대 세계화와 금융시장 개방 등 굵직한 이슈를 한은이 앞서 제언했다”고 입을 모은다.

요즘도 그럴까. 한 민간 연구소 관계자는 “저성장 저물가, 고령화로 인한 성장잠재력 감소와 부채 급증 등 위기감이 높지만 한은에선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외부 공표 보고서 반토막

한은이 발표하는 주요 수시보고서 3종(BOK경제연구·경제리뷰·이슈노트)을 집계해 보면 감소세가 뚜렷하다. 올해 상반기에는 금리 변동이 고용률에 미치는 영향, 자유무역협정(FTA)이 무역에 미친 효과 등 총 14건의 보고서를 내놨다. 상반기 기준으로 2013년 36건에서 2014년 30건, 2014년 26건에 이어 3년째 줄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2014년 4월 취임하면서 조사 역량을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고용과 노동 분야의 분석 인력을 확충했다. 장기 성장을 위해서는 구조개혁이 동반돼야 한다고 이 총재가 강조해온 대로다. 하지만 외부로 나가는 제언은 오히려 줄었다.

지난 4월 취임한 한 금통위원은 “애써 분석해 놓고 공개하지 않는 자료가 생각보다 많았다”며 “통화정책의 일관성을 위해 ‘방향이 다른 자료’는 걸러낸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한은 자료에 한국 경제가 없다

보고서 양의 문제만은 아니다. 당국자와 경제전문가 사이에서는 “언제부터인가 한은 자료를 잘 보지 않게 됐다”는 고백이 적지 않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얼마나 복잡한 분석기법을 썼나 한참 설명한 뒤 다 아는 결론으로 끝날 때가 많다”며 “한국 얘기가 없어서 ‘누구 보라는 건가’ 싶은 논문도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한 민간 연구소 관계자는 금융위기 이후 통화정책의 각국 영향을 다룬 한은 논문을 보고 저자에게 몇 달 전 전화를 걸었다. 분석 대상으로 삼은 각국 금융시장 동향에서 한국은 어떤지 문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저자가 ‘나는 통계기법에만 기여해서 한국 사례는 모른다’고 하더라”며 “한국에 무관심한 것인지, 아니면 분석 결과가 조심스러워서 모른 척하는 것인지 알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구조개혁에 한은 목소리 내야”

논란을 피하려다 ‘남대문로의 섬’이 되고 있는 한은. 역사적 배경이 없지는 않다. 한은 조사국 출신인 한 고위 관계자는 “제언을 하면 관련 부처에서 한소리 하고, 과감하게 진단하다 틀리면 언론이 비난한다”고 말했다.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도 자유롭지 못했다. 금통위원 출신인 한 교수는 “개별적인 의견을 공표하면 통화정책에 혼란을 준다고 비난받기 쉽다”며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과거에 더 이상 매여 있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의 통화정책 패러다임으로 오늘날 저물가를 설명하기 어려워졌다”며 “중앙은행이 가장 빨리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성장을 위한 중앙은행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한은의 자성론도 있다. 한은이 시야를 넓혀 한국 경제 해법을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유미/심성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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