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지 지식사회부 기자 summit@hankyung.com
[ 심은지 기자 ] “무고 사건 처리하느라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에요.” 21일 만난 A경찰서 수사과장은 피곤한 눈을 비비며 하소연했다. 사소한 말다툼에서 시작된 사건이 무고로 이어지면서 결국 대법원까지 가는 일도 숱하다.
한국경제신문은 지난 20일 죄 없는 사람을 옭아매기 위한 ‘잔인한 거짓말’ 무고 범죄가 매년 1만여건씩 발생한다고 보도했다. 독자 반응은 뜨거웠다. ‘무고를 살인보다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는 등 극단적이긴 하지만 무고 범죄의 심각성에 공감하는 댓글이 많았다.
경찰 및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무고 사건이 급증했다. ‘소송 만능주의’가 팽배해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갈등 상황이 발생하면 무조건 소송을 걸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무고 범죄도 증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민사 소송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사기, 협박 등의 혐의로 맞고소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사건이 진행될수록 양쪽이 감정적으로 대응하면서 허위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선 경찰들은 소모적인 무고 滑介?매달리느라 날을 샌다. 거짓 사건으로 추정되더라도 일단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진 밤새 수사할 수밖에 없어서다. 법원도 마찬가지다. 판사들은 산더미처럼 쌓인 진술서와 증거를 검토해야 한다. 정작 법의 도움이 절실한 이들의 ‘억울함’은 뒤로 밀리기 일쑤다. 심재무 경성대 법학과 교수는 “툭하면 소송을 거는 법 의식부터 개선돼야 한다”며 “선진국은 법정에 가지 않더라도 공정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회적 신뢰가 구축돼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각종 중재제도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소송 전에 당사자 간 합의를 유도하는 대체적 분쟁해결(ADR) 제도가 있지만 2014년 기준 조정 비율이 4.7%에 불과하다. 미국과 일본에선 50% 이상이 법정으로 가기 전에 당사자 간 조정을 통해 합의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소송을 중재하기 위한 조정위원회도 등장했지만 이를 통해 갈등을 해결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제도만 만들어 놨을 뿐 실효성 있게 운영하지 못하는 것 아닌지 의심이 드는 이유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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