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에 돈 맡길 때 내는 수수료 아깝다"
수익성 악화에 대안 찾는 금융사
예치 보관료 최대 연 1.25% 부담
현금으로 자체 보관하는게 이익
독일 2위은행 등 ECB서 인출 검토
[ 이상은 기자 ] 마이너스 금리체제를 도입한 유럽에서 은행·보험사 등 금융회사가 기업과 가계에 대출을 늘리기보다 현금을 쌓아두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대출을 촉진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의도로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현장의 금융회사는 청개구리처럼 반대 방향으로 행보하고 있다.
유럽 금융회사가 ECB·스위스·덴마크·스웨덴 중앙은행에 맡기는 예치금에는 연 -1.25~-0.4% 금리가 적용되고 있다. 예치하면 중앙은행에서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도리어 수수료(부과금)를 물어야 한다는 의미다. 정책 취지대로라면 수수료를 내지 않기 위해 금융회사는 대출을 늘려야 한다.
◆獨 코메르츠방크 등 현금인출 검토
17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독일 재보험사 뮌헨리는 올 들어 ECB에서 수천만유로를 인출해 현금으로 보관하고 있다. 니코라우스 폰 봄하르트 뮌헨리 최고경영자(CEO)는 올초 “현금 보관이 (마이너스 금리로 인한 수익성 감소에 대응할) 실용적 대안이 될지 알아보기 위해 돈을 인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뮌헨리는 지난 수개월간 “감당할 만한 비용”으로 현금 보관이 가능했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독일 시장 2위 코메르츠방크를 비롯해 독일계 은행도 지난 3월 ECB가 금리를 추가 인하하자 ECB에서 현금을 인출해 자체 보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스위스의 한 연금펀드는 돈을 인출하려 했으나 스위스중앙은행의 거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현금 보관엔 비용이 든다. 수송·보관의 어려움도 있지만 현금 도난과 지진 등 대형 재난에 대비하는 보험료를 내야 한다. 업계에선 보관금액의 0.5~1% 정도를 해마다 보험료로 내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ECB 예치금 금리(연 -0.4%)보다 비싸지만 스위스 예치금 금리(-0.75%), 덴마크 예치금 금리(-1.25%)보다 싸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서 유통되고 있거나 은행이 보유한 돈의 규모는 2조750억유로(약 2500조원)에 이른다. ECB가 2018년부터 500유로짜리 지폐를 발행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최고액권인 200유로짜리로 보관한다 해도 이삿짐 트럭 298대를 꽉 채울 분량이다.
◆금융사 VS 중앙은행 확산되나
금융사가 중앙은행에서 돈을 빼 현금으로 자체 보관하겠다고 하는 것은 중앙은행에 ‘반기’를 드는 일이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는 길을 끊어 권위를 훼손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금융회사가 현금 보관을 검토하는 것은 사정이 그만큼 절박해서다. ECB가 뗌犬駕?금리를 도입한 2014년 이후 ECB 결정을 따르는 유로존 각국 중앙은행이 거둬들인 마이너스 예치금 이자(부과금)는 26억4000만유로(약 3조3000억원)에 달한다.
ECB는 마이너스 금리 골을 더 깊게 판다고 공언했다. 그렇다고 금융회사는 소비자에게 쉽사리 비용을 전가하지 못하고 있다. 독일 도이치뱅크는 소비자가 예금한 돈에 여전히 연 0.01~0.1% 금리를 준다. 마이너스 금리체제와 양적완화(QE) 정책으로 저금리가 장기화하고, 장·단기 금리차가 줄면서 전통적인 금융회사의 수익 기반은 크게 쪼그라들었다.
다만 FT는 현금 인출이 대량으로, 광범위하게 일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전망했다. ECB를 향해 ‘금리를 더 떨어뜨리면 더 많이 인출할 수도 있다’는 시위 성격이 짙다는 설명이다. 한 독일은행 관계자는 “대량의 현금 보유는 비용이 많이 들고,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한계를 보여주기 때문에 양쪽 모두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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