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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진의 괴발개발] 아재가 만든 소녀감성 카메라앱…"내 취향은 다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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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아저씨들 취향을 버리다
카메라 앱과 늦사랑 빠진 원주 올드보이

욕심 빼고 기본 충실한 '나인캠'
"9개 필터로 승부하려면 900장 사진 찍어야"




아이를 낳는 기분.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쓰는 모바일 서비스를 처음 세상에 선보일 때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다. 스마트폰 속 앱들은 누구의 손에서 어떻게 왜 태어났을까. 세상에 아무렇게 쓰는 앱은 있어도 아무렇게 만들어진 앱은 없다. 'Why not(왜 안돼)?'을 외치는 괴상한 IT업계 기획·개발자들. [박희진의 괴발개발]에서 그들의 개발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한다.

"어때. 괜찮은 것 같아?"

"응. 난 마음에 드는데…"

"그래? 그럼 빼야겠다."

꽁트 속 대화가 아니었다. 두 남자는 진지했다. 40대 아저씨 둘은 '소녀감성'의 카메라 필터를 얻기 위해 각자의 취향은 무조건 빼는 쪽을 택했다. '나인캠'은 더하기가 아닌 '빼기'의 원칙 아래 탄생한 카메라 앱(응용프로그램)이다.

필터도 뺄 수 있는 건 전부 빼버렸다. 9개 필터만 제공한다고 해서 이름도 나인캠이다. 최소 수십개에서 최대 수백개의 필터를 제공하는 다른 카메라 앱들과는 분명히 다르다.

"만들면서 확신이 안 설 때가 있었어요. 그래도 카메라 앱인데 최소한 필터 20개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죠. 그럴 때마다 처음의 마음을 되새겼어요. 전문가가 아닌 누구나 쓰기 쉬운 카메라 앱을 만드는 게 저희 목표였습니다. 수많은 필터 중에 어떤 걸로 찍을 지 고민하는 것도 누군가에겐 골치 아픈 일이거든요."(박남규 팬타그램 대표·41)

엄선된 9개 필터는 빼고 또 빼는 과정을 거쳐 추려진 것들이다. 50개 필터가 20개가 되고 10개가 됐다. 그래도 아쉬워 마지막엔 1개를 더 줄였다. 나인캠엔 필터 값을 조정하는 세부 조정 버튼이나 슬라이드도 없다. 이용자는 9개 필터 중 하나를 선택해 사진만 찍으면 된다.

"일반인들의 30% 정도만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 앱을 사용해요. 그만큼 카메라 앱 사용을 귀찮거나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죠. 카메라 앱에서 필터 값까지 조정해 쓰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고요. 저희가 주목한 건 카메라 앱이 익숙하면서 힘들이지 않고 예쁜 사진을 얻고 싶은 20~30대 여성이었어요."(김건용 팬타그램 이사·42)

박 대표에게 개발자는 8번째 직업이다. 토목 엔지니어, 측량사, 부동산 컨설턴트 등 대학 졸업 후 7번 직업이 바뀌었다. 2007년 싱가포르에서 우연히 아이폰을 처음 보고 개발에 대한 꿈을 키웠다. 늦게 시작한 개발이었던 만큼 이를 더 악물었다. 2009년부터 5년동안 연세대 원주 캠퍼스 창업보육센터에 머물 당시 그의 별명은 '올드보이'였다.

"5평짜리 방에서 먹고 자면서 공부와 개발만 했어요. 당시 옆 사무실에 입주해있던 컬러리스트와의 만남으로 카메라에 눈을 뜨게 됐죠. 회사나 직원이 없는 1인 개발자로서 도전하기 쉬운 분야이기도 했고요. 카메라 앱이 상대적으로 기획이나 마케팅 부담이 덜할 것 같았거든요."(박 대표)

그 때부터 박 대표가 만든 카메라 앱만 51개에 달한다. 현재까지 그가 개발한 유·무료 앱 누적 다운로드는 500만건을 기록하고 있다. 'A필터' '필터그램' '인프레임 컷' 등은 프랑스 태국 등 해외 앱스토어에서 전체순위 1위를 기록한 앱들이다. 이들 유료 앱으로는 20만달러(약 2억2000만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서울로 돌아와선 김 이사와 팬타그램을 설립하고 지난달 11일 나인캠을 정식 출시했다. 나인캠 역시 국내 출시 나흘 만에 앱스토어 무료앱 전체 순위 1위에 올라 열흘동안 선두를 지켰다. 나인캠의 현재 누적 다운로드 수는 50만건에 이른다. 최근엔 신규 다운로드의 90%가 태국에서 발생할 만큼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다.

그들은 개발자에게 카메라 앱 만들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고 털어놨다. 다른 서비스나 프로그램 대비 단순히 개발에만 필요한 기술 문턱이 낮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좋은 카메라 앱을 만드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언제 어디서 찍더라도 예쁜 사진이 나오는 카메라 필터는 만들璲?쉽지 않아요. 예를 들어 어떤 사진을 포토샵으로 보정했는데 마음에 들었다고 쳐요. 그래서 그 보정 값 그대로 다른 사진들에 적용하면 어떨까요? 이상한 결과물이 나올 가능성이 커요. 포토샵을 써보신 분이라면 한 번쯤 경험하셨을 겁니다."(박 대표)

"한 번은 경리단길에서 찍은 수백장의 사진들을 기반으로 정말 마음에 드는 필터를 만들었어요. '이것 되겠다' 싶었는데 해외 여행가서 찍으니까 별로더라고요. 국내랑 해외랑 빛 차이 때문에 같은 필터로 찍어도 결과물이 완전히 달라진 거죠. 처음부터 어디에나 맞는 필터는 없습니다. 대신 어디에나 맞춰주는 필터는 있어요."(김 이사)

시행착오 끝에 두 남자는 고정 필터의 한계를 보완한 '라이브 필터'를 개발했다. 빛의 양과 시간대 등에 따라 실시간으로 필터의 밝기, 노출, 화이트밸런스 값이 바뀌는 기능이다. 라이브 필터를 완성하기까지 실내외 다양한 장소에서 수백장의 사진을 찍었다. 한 곳에서만 여러 장의 사진을 찍으며 시간대별로 최적의 필터 값을 찾아냈다.

김 이사는 스마트폰에 저장된 똑같은 사진 수십장을 보여줬다. 같은 위치와 구도에서 시간 간격을 두고 찍은 사진들이라고 했다. 자세히 보니 밝기가 조금씩 다른 사진들이었다.

카메라 필터는 패션과 비슷하다는 게 그들의 얘기다. 계절이나 시기별로 금방 바뀌는 유행을 놓쳐선 안된다고 했다. 센스 없는 '아재'가 되지 않기 위해 이들은 지금도 부지런히 유행을 좇고 있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통해 요즘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사진을 찾아보고 연구한다. 옆 사무실 20대 여성 직원을 불러 필터에 대한 냉철한 평가도 부탁한다.

"몇 년전엔 필름 카메라 같은 아날로그 느낌의 필터가 인기였다면 지금은 좀 더 밝고 화사한 필터가 반응이 좋아요. 나인캠의 기존 필터도 유행에 맞춰 값을 미세하게 계속해서 조정하고 있어요. 당연히 유행에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판단되면 필터 자체도 과감히 바꿀 예정입니다. 욕심이 있다면 카메라 필터 트렌드를 창조하며 이끌고 싶은 것이랄까요.(웃음)"(김 이사)

"카메라 앱을 넘어 사진 기반 SNS나 플랫폼을 개발해보고 싶어요. 비슷한 서비스가 많으니 뭔가 차별화된 포인트를 넣어야 겠죠. 예를 들면 이용자들이 더 좋은 사진을 찍게 유도하는 순위 경쟁 시스템을 넣을 수도 있고요. 자세한 건 사업 아이템이라 비밀입니다.(웃음) 서비스 출시하면 또 한 번 인터뷰하러 와주세요."(박 대표)

박희진 한경닷컴 기자 hotimp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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