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하다 '인생의 짝'만 만나면 좋은데…
직장인의 사내연애 & 불륜
갑자기 옷 벗은 임원 왜?
부하 여직원 고과 높게 줘
단톡방서 수군…알고 보니 불륜
사내 결혼 많은 영양사들
업무 다른 남직원 쉽게 접촉
사귀다 헤어져도 부담 작아
연애 당사자들 '눈칫밥'도
"연애하느라 정신 팔려…"
작은 실수에도 핀잔 들어
[ 이수빈 기자 ] 한 보험사의 김모 부사장은 ‘차기 사장감’으로 꼽혔다. 그러던 그가 갑작스레 옷을 벗었다. 알고 보니 유부녀인 부하 여직원과의 염문이 감사팀에 걸린 것이다. 평소 고과를 매길 때 해당 여직원에게 과한 점수를 주다가 불이익을 본 직원들이 ‘이상하다’며 제보한 게 사실로 드러난 것. 얼마 뒤 해당 여직원도 사직하고 자취를 감췄다.
남녀가 여럿 모이면 ‘스파크’가 튀기 마련이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야근과 초과 근무를 밥 먹듯 하며 하루 10시간 넘게 같이 지내다 보니 정들고 사랑이 생겨난다. 하지만 인생의 짝을 만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나가다 사내 불륜으로 패가망신하는 사람도 있다. 직장인의 사내 연 翎?불륜을 둘러싼 백태를 들여다봤다.
김과장 이대리들의 사랑
중소기업에 다니는 박모 대리(33)는 그동안 선배 최모 과장이 너무 부러웠다. 잘생기고 매너 좋은 최 과장은 인기가 많았다. 그는 박 대리의 동기 이모 대리와 공개 사내연애를 거쳐 1년 만에 결혼했다. 손꼽히는 미모의 이 대리와 최 과장은 ‘비주얼 커플’로 불렸다. 하지만 이들의 결혼은 2년 만에 파탄났다. 구매를 담당하는 최 과장이 거래처의 다른 여성과 만나다 발각돼서다. 입방아에 오른 이들은 둘 다 이혼 1년도 안 돼 회사를 나갔다. 박 대리는 “그렇게 잘 어울리던 커플이 헤어지니 모두 안타까워했다. 예쁜 부인을 두고 바람을 피운 최 과장이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최근 모 은행에선 유부남인 노조위원장이 한 여성 노조원과 불륜에 빠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두 사람의 애정행각을 목격했다는 얘기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지면서다. 사내 카카오톡 단톡방(단체톡방)엔 그가 노조원과 데이트를 즐기는 사진까지 올라왔다. 성모 행원(29)은 “능력 있는 노조위원장이지만 조만간 좌천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 대기업에선 창업자의 딸인 여성 경영인이 갑작스레 물러났다. 그동안 좋지 않은 소문이 나돌던 그였다. 소문은 이랬다. 마흔 넘게 독신이던 이 사람은 강남 호스트바를 드나들곤 했는데 여기서 만난 한 남성 접대부에게 빠져 인사 등 회사와 관련된 여러 부탁까지 들어줬다는 것. 실제 이 회사에선 최근 이해 못할 인사가 거듭됐다. 소문이 퍼지고 회사가 술렁이자 창업자가 나섰다. 창업자는 인사 배경 등을 조사한 뒤 딸을 경질하고 전문경영인을 선임했다.
대대로 전해지는 사내 연애 비법
사내 연애를 통해 달달한 직장생활을 즐기는 직장인도 있다. 한 기업의 영양사팀은 ‘사내 연애의 메카’로 불린다. 여성으로 짜인 이 팀에선 작년 사내 연애로 세 커플이 결혼에 골인했다. 업무상 다른 팀 직원과 만날 일이 많다 보니 사내 ‘훈남’ 정보는 모두 꿰고 있고, 업무를 핑계로 연락하기도 쉬운 게 비결이다. 회사 내 동선이 겹치지 않기에 사귀다 헤어져도 얼굴 볼 일이 없어 부담도 작다. 파견직이어서 결혼이 확정되면 근무처를 다른 회사로 옮기기도 편하다. 이 회사의 김희정 대리(32)는 “보통 사내 연애는 뒷말이 많고 헤어져도 계속 마주치게 돼 섣불리 시도하지 못한다. 반면 영양사팀은 조용히 사내 연애를 잘하는 걸로 소문이 나 있다”며 부러워했다.
한 패션기업은 회장이 나서 사내 연애를 장려한다. 사원들끼리 결혼하면 회장이 손수 축하 카드를 써서 과일바구니와 함께 보내준다. 사내 결혼이 애사심을 높인다는 게 회장의 지론이다. 업무상 야근이 많아 회사 밖에선 연애하기 힘들다는 이유도 있다. 사내 결혼한 강모 대리(35)는 “함께 야근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사랑이 싹텄다”며 “결혼식 날 회장님 과일바구니도 받아보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결혼한 사내 커플 “지나친 참견 힘들어”
사내 연애가 구설에 오르면 당사자들은 피곤하다. 주변의 지나친 참견은 스트레스다. 전자업체에 다니는 이모 과장(38)은 같은 부서 동료와 1년여 동안 연애하다 결혼을 발표했다. 이 과장은 “결혼 전까지 누가 알아챌까 조마조마했다”며 “얼마나 속이 후련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과장의 고민은 이후 더 늘었다. “언제부터 눈이 맞았느냐” “앙큼하게 우릴 속였어” “어떤 점이 제일 좋으냐” 등 여기저기서 질문과 질타가 쏟아졌다. 가장 듣기 싫은 건 “한 명은 부서를 옮겨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다. 동료들이 불편하지 않겠냐는 것. “결혼하면 아무 걱정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질문과 참견에 지칩니다.”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최모 사원(28)은 6개월째 사내 연애 중이다. “복사기와 팩스도 둘이 연애하는 걸 안다”는 동료들의 추궁에 두 사람은 공식 커플이 됐다. 그때부터 동료와 상사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휴가철엔 “둘이 어디 좋은 데 같이 가느냐”고 묻는가 하면, 작은 실수만 해도 “연애에 정신이 팔렸다”는 말을 들었다.
올해 진급을 앞둔 두 사람은 회사 내에선 업무 외 잡담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랬더니 “서로 말 안 하는 걸 보니 싸웠다” “결혼 문제 때문이라더라” 등의 소문이 나돌았다. “처음엔 매일 회사에서 애인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좋았어요. 이젠 누가 사내 연애한다고 하면 보따리 싸들고 말리고 싶네요.”
회계법인에 근무하는 박모씨(31)는 사내 연애를 하던 이모씨(30)와 최근 헤어졌다. 크지 않은 회사에서 공개연애를 해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한 건데, 이게 화근이 됐다. 이씨와 연애 중인 걸 모르는 남자 직원들이 이따금 박씨 앞에서 이씨에 대한 ‘음담패설’을 내뱉는데, 이게 박씨에겐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박씨는 “여자 친구의 옷차림, 술버릇 같은 것이 회자되는 게 기분 나빴다”며 “여자 친구에게 ‘오해 살 일을 하지 말라’고 여러 번 얘기했다가 말다툼을 하게 됐고 결국 헤어졌다”고 울상을 지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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