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일찍부터 올빼미형 인간(night guy)이라고 했다. 백악관 입성 후에도 새벽 2시까지 안 잔다고 한다. 그런데도 저녁 식사 후 먹는 것은 물과 아몬드뿐이라고 최근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그가 먹는 아몬드가 6개도, 8개도 아닌 7개라는 게 흥미롭다. 매일 꼭 7개라는 것에서 임기 말 백악관 공보팀의 이미지 전략도 배어나지만 대통령의 밤은 관심거리가 될 만하다.
청와대 오찬이나 만찬 행사도 언뜻 산해진미를 연상할 수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칼국수를 유달리 좋아하던 김영삼 대통령 때는 청와대 오찬 후 식사를 다시 해야 했다는 인사도 있었다. 몇백명씩 참석하는 해외의 국빈만찬에서 식어버린 말고기에 손이 안 가 늦은밤 영빈관에서 김치 얹은 라면을 먹고서야 잠들 었다는 대통령도 있었다.
늘 먹는 식사지만 한끼라도 놓치면 하늘까지 살짝 노래지는 게 보통 사람의 몸이다. 50년간 매일 한끼만으로 생활했다는 작고한 망명객 황장엽 씨나 김동길 전 교수 같은 이들에겐 기벽이 느껴진다. 식사만큼 규칙성 반복성 동일성의 원리 같은 게 적용되는 생활영역도 없다. 그래서 아침밥만큼은 국까지 곁들여야 한다는 이들은 탔?꼭 챙겨먹는다. 반면 아예 건너뛰는 쪽은 영양학자들이야 뭐라든 본인 패턴의 균일성 유지가 나름의 건강법이다.
소식(小食)이냐, 포만감이 들 때까지냐에도 정답은 없다. 미식가면서 대식가로 알려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선 때 유세일정을 마치면 그 나이에도 먼저 찾는 게 야식이었다니 그게 본인만의 체력 보강책이었다. 그래도 소식과 장수를 결부시키는 연구는 적지 않다. 어제 나온 100세 이상 고령자 통계에도 그런 대목이 있다. 전국의 상수(上壽) 노인 3159명 중 39.4%가 ‘소식 등 절제된 식생활’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했다. 물론 ‘그러면 나머지 60%는 소식 여부가 장수와는 상관없나?’라거나 ‘소식이 장수의 원인이라기보다 현재 생활이 그렇다는, 즉 장수의 결과’라는 반론도 가능하겠다. 그럼에도 ‘학(鶴)이 장수하는 것은 늘 속이 비어있기 때문’이라고 전해지는 걸 보면 소식의 장점이 큰 것 같다.
소식(小食)보다 소식(素食), 즉 기름진 육류를 배제하는 섭생이 관건이라는 주장도 있다. 양쪽 다 현대병이라는 온갖 대사증후군에 도움이 될 양생법이다. 하지만 먹는 즐거움을 어떻게 극복하나. 더구나 맛방과 맛집, 비법요리로 사방에서 유혹하는 세상이다. 소식(小食)도 좋고 소식(素食)도 좋지만 웃으며 편히 먹는 소식(笑食)이야말로 건강장수 식사법이 아닐까.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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