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훈의 현장 속으로
전직원의 40%가 연구원…인공지능 사업 '시동'
미국 두 곳과 KAIST에 연구소 3개 잇따라 설립
매출의 10% R&D 투자…고광일 사장 역발상 경영
"눈앞 먹거리만 집착 말고 불황일때 미래 대비해야"
[ 김낙훈 기자 ]
서울 가산동 가산디지털밸리에 있는 고영테크놀러지. 방마다 보안장치가 있어 외부인은 안내자 없이 한 발자국도 들어설 수 없다. 고광일 사장의 안내로 문을 몇 개 지나자 ‘3차원(3D) 뇌수술용 로봇’이 나타났다. 환자 두뇌 부위를 촬영한 자기공명영상(MRI) 및 컴퓨터단층촬영(CT) 영상에 3D 센서기술과 로봇시스템 등을 결합한 의료용 장비다. 실시간으로 환부 등을 파악해 신경과 혈관 등 치명적인 부위를 피해 수술하도록 돕는다.
3D 뇌수술용 로봇은 이 회사가 세계에서 처음 개발 중인 의료기기다. 국내에선 한양대 의대를 비롯한 몇몇 대학병원, 미국에선 하버드 의대와 함께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다.
고영테크놀러지는 원래 ‘납도포검사장비’와 ‘납땜 및 부품실장검사장비’를 생산하는 업체다. 검사장비를 보쉬 캐논 등 1700개 기업에 납품하고 있다. 검사장비는 ‘스마트공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생산라인에서 일종의 센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어느 생산공정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정확히 짚어낸다.
고영테크놀러지는 검사장비를 기반으로 스마트 공장과 관련한 다양한 미래 먹거리 발굴에 적극적이다. 전체 직원(403명·해외 포함)의 40% 선이 연구원인 이 회사는 연말까지 세 곳의 외부 연구소 개설을 끝낼 계획이다. 지난달에는 미국 샌디에이고에 ‘고영인공지능(AI)연구소’를 설립하고 컴퓨터 공학박사 강진만 씨를 소장으로 영입했다. 고 사장도 서울대 공대, 미국 피츠버그대(로봇공학 박사)를 나와 LG전자와 미래산업을 거친 엔지니어다. 고 사장은 “강 소장은 글로벌 기업인 휴렛팩커드에서 키보드 없이 제스처만으로 컴퓨터를 작동시키는 제품을 연구한 팀장급 연구원 출신”이라고 밝혔다. 샌디에이고 연구소는 5명의 연구원으로 출발했지만 점차 인원을 늘려 20명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고영테크놀러지는 지난 5월 미국 뉴욕주립대 빙햄턴캠퍼스에 ‘고영 스마트전자제품제조연구소’도 출범시켰다. 이 연구소는 뉴욕주립대 교수 3명과 연구원이 주축이다. 연구팀과 생산장비(칩마운터 등)를 네트워크로 연결해 전자제품 생산 공정의 이상 유무를 실시간으로 파악, 개선점을 반영한다. 고 사장은 “이게 바로 스마트공장 구현의 핵심 기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하반기에는 대전 KAIST에 인공지 П맑?가칭) 설립을 추진 중이다.
고 사장이 3개 외부 연구소를 잇따라 발족시키는 것은 4차 산업혁명 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는 지금이 ‘위기이자 기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불황일 때 미래를 준비한다는 생각으로 불황일수록 투자를 더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영테크놀러지는 매출의 10%가량을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이 회사는 유연한 발상과 연구를 위해 개방된 기업문화를 갖고 있다.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울 뿐 아니라 회사 현황과 비전을 모든 임직원이 공유하고 있다. 고영테크놀러지의 2015년 매출(연결 기준)은 1459억원, 당기순이익은 235억원이었다. 지난 1분기 매출은 37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7.2% 늘었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스마트공장과 인공지능 자율주행자동차 드론 등 수많은 미래형 제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중견·중소기업은 당장의 먹거리에 관심을 기울일 뿐이다. 미래를 준비하며 차세대 분야에 적극 투자하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스마트공장을 도입해 생산성을 올리고 유연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를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삼으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고영테크놀러지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
[한경닷컴 바로가기] [스내커] [한경+ 구독신청]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