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씨 소설집 '중국식…' 출간
[ 양병훈 기자 ] 러시안 룰렛(리볼버 권총에 하나의 총알만 장전하고 게임 참가자가 돌아가며 자신의 머리에 겨눠 발사하는 것)에서 총알이 언제 발사될지 결정하는 건 우연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소설가 은희경 씨(57·사진)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끄는 반전은 우연히, 그러나 반드시 나타난다”며 “때로 공교로운 운명은 악의를 감추기 위해 우연을 가장하고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라고 했다.
은씨가 새 소설집 《중국식 룰렛》(창비)을 냈다. 작가는 이 소설집을 “삶을 의도치 않게 이끄는 우연에 대한 얘기”라고 정의했다. 수록된 단편 여섯 편은 각각 술, 옷, 수첩, 신발, 가방, 사진, 책, 음악 등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것들을 소재로 삼았다. 표제작 ‘중국식 룰렛’은 한 싱글몰트 위스키 바가 배경이다. 이 바는 격이 다른 수많은 싱글몰트 위스키를 라벨을 가린 채 같은 값에 내놓고 손님이 직접 골라 마시게 한다. 네 남성은 우연이 지배하는 바에서 자신의 삶을 바꾼 우연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작가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던 뜻밖의 일들이 우리를 어떻게 바꿔놓을 수 있는지 다뤘다”고 소개했다. 그는 “우리는 인생을 목표를 갖고 정면돌파하며 살지만 삶에는 그런 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며 “살짝 샛길로 빠지는 위로의 순간을 그렸다”고 덧붙였다.
작가에겐 ‘냉소와 위악의 작가’란 수식어가 붙는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들도 작가 특유의 냉랭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소설 속 화자가 자신의 삶을 얘기하면서도 다른 이의 삶을 말하듯이 한발 떨어져 보는 식이다. 그는 “시스템에 얽매인 개인은 주어진 길로만 가면서 그게 자신이 정말로 원하던 것인지, 꼭 해야 하는 것인지 묻기가 쉽지 않다”며 “문학은 시스템 밖에서 자기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으며 삶을 관조하기보다 생각의 균형을 잡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변화의 조짐도 있다. 이 소설집에서 “더 좋아진다는 뜻이겠지?”라는 문장으로 마지막을 맺은 게 그런 예다. 은씨는 2008년 소설가 박경리의 부음,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건, 지난해 자신을 찾아온 심장 부정맥 진단과 손자의 출생 등이 소설 쓰기에 영향을 미쳤다고 털어놨다. 그는 “냉소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느꼈다”며 “작가는 작품으로 그런 질문을 던져보는 거고, (대답은) 독자가 각자 자기 인생에서 찾아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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