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금융부 기자) 조선·해운 등 취약업종 구조조정이 한창입니다. 경영난에 허덕이는 부실 기업부터 아직은 정상이지만 불확실한 업황 속에서 미래를 대비해야 할 기업까지, 팔 수 있는 자산을 모두 팔아 몸집을 줄이면서 내실을 키우기 위한 작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방위적인 업종·기업 구조조정에 긴장하고 있는 건 기업 최고경영자(CEO)나 임직원, 정부뿐만이 아닙니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은행들 역시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직접적인 문제는 단연 충당금 부담에 따른 실적 악화입니다. 은행들은 부실 채권에 따른 손실을 막기 위해 충당금 명목으로 이익의 일부를 미리 떼어 놓습니다. 충당금 규모는 여신의 자산건전성 등급에 따라 달라지고요. 충당금을 많이 쌓을수록 이익은 줄지만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충격을 한번에 받지 않으려면 미리 부실 가능성이 있는 여신을 솎아내 적당한 시점에 자산건전성 등급을 조정하고 충당금을 쌓아놓는 게 유리합니다.
은행 자체적으로 결정하고 실행하면 되는 사안 같지만 꼭 그렇지 만도 않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이 대표적인 사례죠. 수년간 이어진 업황 침체와 재무상태 악화로 대우조선해양은 구조조정이 진행 중입니다.
올 1분기 국내 은행들은 저금리·저성장 기조 속에서도 나쁘지 않은 실적을 거뒀습니다. 대우조선해양처럼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자산건전성 등급을 하향 조정하고, 충당금을 더 쌓아 대비하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대다수 은행은 모두 대우조선해양의 자산건전성 등급을 정상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인 만큼 주채권 은행인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의 자산건전성 등급을 정상으로 분류하고 있는 상황에서 독자 행동에 나서는 것에 부담을 느껴서죠. 정부에서는 개별 은행의 자산건전성 등급 하향 조정이 외부에 안 좋은 신호로 비칠 수 있다는 이유로 대우조선해양 자산건전성 등급을 유지할 것으로 암묵적으로 주문했거든요.
이런 와중에 국민은행이 총대를 매고 지난 1분기에 먼저 대우조선해양 자산건전성 등급을 정상에서 그 아래 단계인 요주의로 낮췄습니다. 1000억원 가량의 충당금을 새로 쌓았고요.
물론 여건이 좋았습니다. 국민은행은 충당금을 얼마나 쌓을 지의 기준이 되는 부도시 손실률(LGD) 산출 방법을 지난해 개선했습니다. 과거 데이터가 아닌 최근 데이터를 반영해 더 정확한 충당금 규모를 쌓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꾼 것이죠. 이 과정에서 대규모 충당금 환입이 발생했습니다. 약 1700억원입니다. 국민은행이 과거 예상했던 것 보다 부실화된 여신이 적었단 얘기입니다.
이럴 경우 대다수 금융회사들은 환입액을 이익으로 잡으려고 합니다. 임기가 정해져 있는 CEO 입장에서는 이렇게 예상치 못한 이벤트로 ‘깜짝 실적’을 내는 게 나쁘지 않아서죠. 하지만 국민은행은 그대로 이익으로 잡는 것보다 앞으로 더욱 거세질 기업 구조조정에 대비하는 게 낫다고 풔洑颯윱求?
경기가 불확실할 수록 리스크 관리에 좀 더 주력하는 게 은행의 기초체력을 다지는 일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임의적으로 충당금을 더 쌓을 수는 없기 때문에 대우조선해양 자산건전성 분류를 조정했고요.
이런 소식이 금융권에 알려지면서 많이 뒷얘기들이 오고 갔습니다. “국민은행이 변했다”라는 게 주를 이뤘죠. 사실 국민은행은 확실한 지배구조를 갖추지 못해 고비마다 정부와 금융당국에 휘둘리기 일쑤였거든요. 각종 청탁과 로비 등으로 인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떠 안은 대기업 여신이 많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금융권에서 ‘리스크 관리 강자’라고 불렸던 신한은행은 뒤늦게 지난달 31일이 돼서야 여신관리협의회를 열고 대우조선해양 자산건전성 등급을 정상에서 요주의로 조정했습니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뒤따를 전망이고요. 이런 저런 눈치를 살피기 보다 명확한 소신과 기준으로 여신 정책을 펴고 있는 국민은행이 다른 부문에서도 어떤 변화를 보여줄 지 기대해봅니다. (끝) /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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