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 아이디어 쏟아내
베트남의 '모태 사업가', 여성 억만장자 꿈꾼다
러시아 유학 중 첫 사업
팩시밀리·라텍스 등 수입해 팔아 3년간 100만불 벌어 종잣돈 마련
철강·기계·금융사업 잇단 투자
2007년 저비용 항공사 세워
10년 넘게 철저한 시장조사, 베트남 최초 민영 항공사 설립
위기 딛고 2011년 첫 노선 운항
고공비행하는 비엣젯항공
작년 매출 200% 늘어 5억불
'베트남의 에미레이트항공' 목표, 올해 IPO 성사되면 재산 10억불
[ 홍윤정 기자 ] 비키니 차림의 여성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관중은 기념사진을 찍으며 환호한다. 흡사 동남아시아의 한 휴양지에 온 듯하다. 하지만 축제가 벌어지는 곳은 넓게 트인 휴양지의 모래사장이 아니다. 베트남 최초 민영 항공사인 비엣젯의 항공기 내부다.
비엣젯항공은 이벤트성으로 펼치는 비키니 춤 행사로 그 이름을 알렸다. 여성의 몸을 상품화한다는 논쟁도 있었다. 하지만 비키니 이벤트로 이름을 알린 덕분에 단숨에 베트남 1위 항공사인 베트남항공의 턱밑까지 추격했다. 출항한 지 5년밖에 되지 않은 이 베트남 저비용 陋翩榮?올해 기업공개(IPO)를 앞두면서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달에는 미국 보잉사에 항공기 100대를 주문하는 ‘통 큰’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내세워 기업을 일궈낸 인물은 응우옌 티 푸옹 타오 비엣젯 최고경영자(CEO·45)다. 그는 러시아 유학 시절부터 사업에 뛰어들어 큰돈을 모았다. 그동안 모은 자금으로 베트남에 돌아와 항공사업에 진출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올해 중 IPO가 이뤄지면 그의 재산가치는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넘어서 베트남 최초 여성 억만장자의 반열에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타고난 사업가 여대생
타오 CEO는 그의 나이 21세, 대학 2학년이던 1988년 첫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베트남을 떠나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재무와 경제학을 전공하던 유학생이었다. 그가 시작한 사업은 외국 제품을 러시아로 수입해오는 일이었다. 팩시밀리와 라텍스 등을 일본, 홍콩, 한국 등에서 사들여 러시아 시장에서 팔았다.
그의 집안은 사업과 거리가 멀었다. 어머니는 선생님이었고, 아버지는 약사였다. 물려받은 큰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에게 물품 대금을 지급할 엄청난 자금이 있을 리 없었다. 대신 특유의 성실함과 정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 덕분에 외상 거래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었다. 타오 CEO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공급자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고 항상 정직하게 그들을 대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공급자들은 그를 믿고 더 많은 제품을 장기간 외상으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소련이 붕괴되던 1991년까지 3년 동안 그는 사업을 통해 100만달러를 벌었다.
그는 ?사업으로 마련한 돈을 바탕으로 철강과 기계, 비료와 원자재사업에 투자했다. 베트남으로 돌아온 뒤에는 첫 민간은행인 테크컴뱅크와 베트남국제상업은행(VIB)에 투자했다. 다음으로 눈을 돌린 건 항공산업이었다.
철저한 시장조사로 기회 잡아
타오 CEO는 스스로를 ‘열정적인 조사원’이라고 소개한다. 저비용항공 사업에 진출하기까지 끊임없는 조사 과정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0여년간 젯스타 에어아시아 같은 저비용항공사의 CEO들을 만나면서 저비용항공 분야 조사에 몰두했다”고 말했다. 그가 저비용항공 산업에 대해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한 시점은 맏아들이 첫 돌도 안 됐을 때였다. 당시 베트남 국적의 항공사는 국영 베트남항공 하나뿐이었다. 그는 베트남 정부가 항공산업도 민간에 개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산층이 성장하면서 베트남 정부는 항공 분야에 경쟁을 불어넣기 위해 민영 항공사 설립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그 기회를 잡은 건 항공 분야에 대한 철저한 조사로 무장한 비엣젯이었다. 그는 정부로부터 설립 허가를 받고 2007년 비엣젯을 세웠다.
기업 설립은 이뤄냈지만 첫 취항까지는 4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베트남 정부는 원유 가격 상승, 세계 경제 위기 등 갖가지 이유를 들어 취항을 미뤘다. 비엣젯에 투자한 에어아시아도 철수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비엣젯은 2011년 12월 호찌민~하노이 노선을 시작으로 항공기를 띄웠다.
‘비키니 항공’ 논란에도 끄떡 않아
2012년 8월, 비엣젯의 한 노선에서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이 기내에서 춤을 추는 깜짝 이벤트가 열렸다. 승객들에게는 이들의 사진이 담긴 달력을 기념품으로 나눠줬다. 승객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정부는 그렇지 않았다. 베트남민항청(CAAV)은 비엣젯에 2000만동(약 106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베트남 민간항공관리국 관계자는 “이 항공사가 고공에서 벌인 쇼는 승객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벌금 부과 이유를 밝혔다. 이에 비엣젯 측은 “쇼가 펼쳐질 당시 이미 안전한 고도에 도달한 상태였다”고 해명했다.
비엣젯은 2013년 12월에도 모델 3명을 동원해 이색 비키니쇼를 열었다. 비키니쇼로 비엣젯은 ‘비키니 항공’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외설 논란에 휩싸였다. 여성의 몸을 상품화한다는 비판도 피해가지 못했다. 하지만 타오 CEO는 “아름다운 이미지가 소비자를 행복하게 만든다면 우리는 그것을 할 것”이라며 “우리는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소신을 밝혔다.
비키니쇼가 적절한지는 여전히 논쟁거리지만 홍보 효과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신생 저비용항공사인 비엣젯은 세계인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베트남의 ‘에미레이트항공’ 꿈꿔
타오 CEO의 목표는 150개 도시에 취항 중인 두바이의 에미레이트항공처럼 비엣젯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현재 비엣젯은 34개 국내 노선과 싱가포르, 태국, 미얀마 등 16개 국제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비엣젯은 나아가 국제 노선을 5~6시간 거리의 중국, 러시아, 일본 등지로 확대하고 있다.
비엣젯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205% 증가한 4억9070만달러를 기록했다. О?탑승객 수도 전년 대비 66% 증가한 930만명을 달성했다.
세계적인 항공 컨설팅업체 아시아태평양항공센터(CAPA)는 올해 비엣젯이 베트남 1위 항공사인 베트남항공을 제치고 베트남 국적 최대 항공사로 올라설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조사에서 비엣젯은 향후 20년간 ‘빠르게 성장하는 세계 10대 항공사’에 들 것으로 예상됐다. 타오 CEO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비용 효율적이면서도 고품질의 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홍윤정 기자 yj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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